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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2. 2024

 프랑스 아이가 보낸 한글 메시지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

사춘기 남매 동거 일기  

밀라노에 독감 바이러스가 돌고 있다. 증상은 코로나와 비슷하지만, 코로나 검사를 해도 반응이 없는 신종 독감 바이러스라고 한다. 지난 12월 초부터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12월 말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은 유럽인들의 대이동(우리나라의 명절 대이동과 맞먹는) 이후 바이러스의 감염률은 더욱 치솟았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시간차를 두고 줄줄이 걸리는 형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연말 모임에서 함께 식사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감기에 걸렸고, 그중 몇몇은 열이 떨어지지 않아 일주일 넘게 고생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연휴 내내 집콕을 했다. 으스스한 날씨를 뚫고 놀러 갈 마음도, 스키를 타러 산에 갈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집안에서 아이들과 빈둥거리며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라면을 끓여 먹고,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남들은 다들 여행을 가는데 우리는 안 가냐고 아이들이 몇 번 물어보긴 했지만, 보채진 않았다. 어느새 아이들도 "남들이 모두 가니까 우리도 가"는 비교여행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 덕분에 아이들은 검기에 걸리지도 않았고, 무사히 방학을 마치고 개학날에 맞춰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간지 일주일 만에 바이러스를 데리고 왔다. 둘째 딸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해열제를 아이에게 먹였지만, 열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파서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동생을 보며 첫째 아들아이는 앓는 소리를 했다.

"나도 아파서 학교 가기 싫은데.... 왜 나는 아프지도 않지?"


아이의 말이 씨가 된 건지,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하루 만에 큰아이도 소원성취를 했다. 증상도 아주 똑같이 고열이 났고, 해열제를 먹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너도 아프고 싶어서 소은이한테 뽀뽀했니?"

내 말에 아이는 발그랗게 열띤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아픈 두 아이를 안방 침대에 눕혔다. 수시로 열을 재고, 시간에 맞춰 약을 먹이고, 물을 끓여 먹이고, 입맛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죽을 끓여 대령했다. 열이 나면 시름시름 누워있다 잠이 들고, 몸을 일으키면 어지럽다며 픽 쓰러졌다. 온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누워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애가 탔지만, 아이들은 아닌 듯싶었다. 아픈 몸과 학교를 가지 않아서 좋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간지 이틀즈음 되었을 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둘째의 절친 이사벨은 엄마 핸드폰으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몸은 좀 어떠냐고, 내일은 올 수 있느냐고, 빨리 낫기를 바란다며 메시지를 남겼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첫째 아이 핸드폰으로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보낸 메시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미안해요. 쾌유를 빌어요."

정확하게 한국어로 쓰인 문구였다.


"이 친구, 어떻게 한국말로 썼대?"

"번역기 사용했나 봐."

"와, 진짜 웃기다."

조금 후에 또 다른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 친구 역시 한국말 "안녕하세요 잘 지내죠."라고 보낸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프랑스학교에 다닌 7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엔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일본과 중국은 알아도 코리아는 어디에 있느냐고 되묻곤 했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면, 북한사람이냐 남한사람이냐 꼭 되물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향해 "칭챙총~"하며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말은 아시아 언어를 들리는 대로 말하는 의성어로, 눈을 양 옆으로 찢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최근에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행동이나 말을 금지하고, 교내 따돌림 방지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밀라노 프랑스학교에 다닌 지 3년째가  된 지금은 아시안 아이들을 향한 서툰 행동들이 많이 사라졌다.



한국인에 대한 태도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무래도 K-culture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밀라노에 왔을 때 인종차별을 당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운 마음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마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한국은 몰라도 오징어 게임은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향해 오징어 게임의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라며 환대해 주었고, 쉬는 시간마다 오징어 게임을 하곤 했다.

아이들이 10대가 되면서부터는 kpop의 덕을 보았다. BTS를 시작으로 블랙핑크, 지금은 르세라핌까지. 한국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친구들이 보낸 한국어 메시지를 보며 왠지 뿌듯함을 느꼈다. 내 아이들이 이름도 모르는 아시아의 어느 작은 나라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당당히 인정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저 아이들끼리 보낸 메시지 하나에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넘게 해외에 사는 동안 처음 경험한 이 일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기대할 곳 없는 요즘, 내 아이의 손바닥만안 채팅창, 몇 줄의 메시지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던 아이들은 다행히도 잘  회복되어 다시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다던 아이는, 그동안 못했던 과제가 너무 많아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여러 모양으로 우정을 쌓은 친구들이 있기에 그전보다는 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나라와 인종, 언어를 뛰어넘은 아이들의 우정이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 전체로 점점 번지고 있는 한국어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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