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Jan 24. 2024

12. 은퇴자와의 회식 자리에서 더치페이를 하다

개인주의와 배려


2년 넘게 밀라노에 살면서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더치페이’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함께 식사를 한 후 더치페이로 계산을 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탈리아의 더치페이는 한국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을 경우에는 1/n로 나누어 현금 또는 카드로 각자 계산을 한다. 계산을 하는 직원 역시 매우 당연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계산을 도와준다. 그렇다 보니 카운터에 길게 줄을 서서 계산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만약 음식을 나눠먹지 않고, 각자 주문하고 각자 먹었다면? 자신이 먹은 만큼만 계산하면 된다.


이런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처음엔 매우 낯설었다. 돈을 모아서 한꺼번에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는 2명, 많게는 10명이 하나하나 계산하는 것이 시간도 아깝고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문화가 꽤 좋게 느껴진다. 각자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밀라노에서 거의 40년 가까이 사신 여자분이 말씀하시길, 한국 사람들과 식당에 가면 음식을 계산하는 게 영 불편하다고 하셨다. 현지사람들과 가면 각자 먹은 만큼만 계산하면 되니, 서로에게 부담도 덜하고 편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하면 꽤 많은 금액이 나온다. 한식당의 경우 1인당 20유로가 족히 나오는데 2명이면 40유로가 훌쩍 넘고 4인가족이 외식을 하면 100유로가 훌쩍 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턱 쏠게.” “이번엔 내가 살게.” 하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




몇 달 전에 남편 회사의 파트너 업체에서 은퇴하는 사람의 축하를 위한 점심식사에 초대받았다. 나 포함 5명의 직원이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꽤 유명해 보이는 전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벽에는 유명한 축구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축구복이 걸려 있었고, 유명인들의 사진도 여러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파트너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앉아 있었고, 우리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판을 보며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고르고, 함께 나누어 먹을 피자도 시켰다. 리소토, 파스타, 피자, 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들이 나왔다. 함께 수다를 떨며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이탈리아 직원들에게 현지언어도 배우고, 은퇴하는 사람의 한마디도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전식부터 본식,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대충 음식을 다 먹었을 때즈음 파트너 회사의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당연히 그 사람이 회식비용을 지불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음식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니, 파트너 회사의 직원들이 카운터 앞에 줄을 길게 서서 각자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다.

“각자 자기가 먹은 음식을 계산하는 거예요.”

“예? 아까 그 사장이 계산한 거 아니고요?”

“안 했나 봐요.”

“이게 무슨 회식이에요?”

“우리도 그럼 우리가 계산해야 해요?”

“그런 것 같아요.”

“아니, 이게 무슨 초대예요.”

“그러게요….”

우리 회사 직원 중에 청년 인턴 2명, 계약직 직원 2명, 정직원 1명…. 나를 포함한 직원의 주머니는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거나 6유로면 먹을 수 있는 케밥을 먹었을 텐데.

결국 우리 회사의 한국인 법인장님은 팀 회식비로 처리하겠다며 법인카드를 주섬주섬 꺼내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직장과 직원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배려는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주관적으로 전하는 마음이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은 상대방이 직접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표정, 말투, 제스처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점점 더 이런 배려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나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상대방의 어려움에 대해 아는 체하는 것도 불편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하면 개인주의이고 다른 말로 하면 ‘관심 없음’이 아닐까.

밀라노에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이 바로 ‘관심 없음’이다. 남들이 무엇을 하든지 관심이 없다.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행동을 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떠들어도,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반려견이 똥을 싸도 관심이 없다.

나는 이런 문화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자유로웠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 없음’을 넘어 ‘배려 없음’을 목격한 순간, 타인에 대한 오지랖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지하철 역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 4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통로를 걷고 있었다. 뒤쪽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몸을 뒤로 획 돌렸다. 어떤 남자가 내 가방을 열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 주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바로 옆에 바로 뒤에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분명히 그 남자가 내 가방을 만지는 걸 본 사람이 있었을 텐데,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게 바로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개인주의’였구나….

다행히도 내 가방엔 책과 노트, 성경책만 들어있었다. 그 소매치기범도 훔쳐갈 게 없어 놀랐던지, 내 눈길을 피해 유유히 앞으로 사라졌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좀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한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일상인 유럽에 살지만, 나는 한국사람이고, 정이 넘치는 민족이며, 오지랖 부리는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밥 한 끼 사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카푸치노 한잔, 브리오쉬 하나의 배려를 부리며 내 주위의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아이가 보낸 한글 메시지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