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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9. 2024

마흔 중반, 남보다 조금 이른 갱년기를 시작하며

몸과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지난여름,

너무 심한 자궁근종과 자궁변형으로 갑작스럽게 자궁적출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을 집도해 주신 산부인과 선생님은 양쪽에 남아있는 난소가 꽤 튼튼하기 때문에 생리는 하지 않더라도 호르몬은 분비될 거라 하셨어요. 자궁과 나팔관만 사라졌을 뿐, 난소에서 난자가 배란되는 건 변함없다고 하셨지요.


정말 그랬습니다. 수술 후 몸이 좀 더 피곤하긴 했지만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어요.

아, 매달 생리 때문에 힘들었는데 출혈 걱정도, 생리대 준비도 하지 않아도 돼서 오히려 편했습니다.

저는 배란통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리 예민한 편이 아닌데도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호르몬의 변화에는 꽤 민감한 사람이었던 모양이에요. 배란일이 되면 이상하게 기분이 다운되거나, 자꾸 과식을 한다거나 묵직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궁이 없는데도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전 배란통을 느끼며 조금 안심했어요. 역시 나의 난소는 튼튼하게 살아있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었습니다.





12월 중순,

그러니까 제 몸에서 자궁이 사라진 지 딱 4개월이 되던 날, 저는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한창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음 한 해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저는 갑자기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내가 왜 여기서 살고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내가 이러고 있는지….


정답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던지며,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안일에 있어서는 더욱 심했어요. 손도 까딱하기 싫은데 내가 하지 않으면 엉망이 되고 마는 집안 꼴을 보며 한숨의 크기와 횟수가 점점 늘었습니다.


숨 쉴 구멍을 찾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물에 빠져 꼴딱 대기만 했습니다.

물에 젖은 솜이불이 되어 무거운 몸을 침대에 내던지고 하루 종일 잠을 잤습니다.



어느 날 밤, 옆에 누워있던 남편이 저를 쓰다듬으며 스킨십을 할 때 저는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때서야 남편은 제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지요.

그전에도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곤 했어요. 길을 가다가도, 버스에서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울컥 쏟아지는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울증과 함께 찾아온 증상은 바로 몸의 열기였어요. 밤중에 자다가 너무 더워서 이불을 겉어 차기 일쑤였어요. 함께 누워있던 남편은 춥다며 이불을 꼭꼭 덮었지요. 그전에는 저도 너무 추워서 전기장판을 꼭 틀고, 이불을 턱 밑까지 덮고 잤었는데 말이죠.


언니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나보다 인생을 좀 더 많이 살아 본 언니들의 조언은 꽤 지혜롭거든요.


“그거 갱년기 증상이야. 좀 빨리 시작된 모양이네. 자궁 수술하고 그런가 보다.”


갱년기는 질병 또는 노화에 의해 난소기능이 감소하면서 폐경과 관련된 신체적 및 심리적 변화를 겪는 시기를 말합니다.

저희 큰언니는 2년 전에 폐경이 되면서부터 갱년기 증상을 앓고 있습니다. 꽤 힘들었다고 해요. 여러 증상 중에서도 어깨와 팔, 손가락 관절통으로 힘겨워하고 있지요. 지금은 적절히 운동하면서 잘 이겨내고 있어요.

저희 둘째 언니는 4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한 후  유방암 재발방지를 위해 여성 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어요. 호르몬이 잘 안 나오니, 언니도 역시나 갱년기 증상이 있습니다.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왜 그렇게 우울했는지, 왜 그렇게 피곤했는지, 왜 그렇게 몸에서 열이 났는지…..


아직 잘 기능하고 있을 거라 믿었던 난소가 함께 반응해 줄 자궁이 없으니 외로웠나 봅니다. 난소 역시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침잠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 호르몬도 점점 줄어가고 있나 봅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죠.

10대에 분비되어 나를 여성으로 살게 한 호르몬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았어요. 그저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빨간 손님이 있을 때 느끼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호르몬이 조금씩 사라지니, 몸과 마음의 변화는 급격하게 일어납니다.

갱년기의 주요 증상으로는 상황에 관계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땀이 납니다. 감정의 변화가 잦고, 우울감이 발생하며,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부가 노화되며, 관절에 통증이 생기고 골다공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갱년기 증상이 생기니, 우울한 마음은 더 깊어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지난해를 잘 보내는 일도, 올해를 잘 맞이하는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갱년기 증상이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내가 나를 놓아버릴 것 같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바로 글을 쓰는 일입니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며 남보다 조금 이른 갱년기를 잘 보내보고 싶습니다.


여성의 갱년기가 중요한 이유는, 엄마의 갱년기 증상으로 인해 한 가정이 완전히 변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도 예외는 아니에요.


저는 이제 겨우 44살이에요. 일반적으로 여성의 갱년기는 50이 넘은 후에 생깁니다.

제 또래의 독자분들 보다 5년 정도 일찍 경험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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