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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31. 2024

13. 님아, 그 마늘을 먹지 마오!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


몇 달 전, 한국 본사에서 높으신 분이 출장을 오셨다. 그 유명한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오시는 것이니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오셨더랬다. 처음 그분을 만나 인사할 때 그분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역시 밀라노라고, 사람들이 옷을 정말 잘 입는다고, 매너가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네, 그렇죠. 맞습니다. 정말요.” 하며 입으로는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는 ‘며칠만 지내보시지요….’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잡으신 그분은 식사를 직접 해결해야 했다. 50대 중반의 한국 남자 혼자서 뭘 해 먹을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지만, 근처에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있고, 한인마트에서 산 라면도 있고, 리소토 용 쌀도 있으니 설마 굶진 않겠지…. 생각했다. 압력밥솥은 없어도 냄비밥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야채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까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 먹을 수 있다.


문제는 바로 ‘김치’였다. 마침 집에 있던 김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김치가 없으면 일주일도 못 사는 것일까? 나는 겸사겸사 배추 다섯 포기를 사다가 김치를 만들어 그분께 조금 드렸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아니, 제수씨 요리를 왜 이렇게 잘해요? 김치 진짜 맛있던데. 제가 밥통이 없어서 밥을 못하고 있어요. 밥이랑 반찬도 좀 해주면 안 될까요?”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훠~얼 씬 잘 못 드시고 계셨다.

한국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여기는 밀라노. 게다가 파견 직원은 남편 혼자, 부하 직원도 남편 혼자.


나는 남편을 위해 반찬내조를 하기로 결심하고 말았다….




토요일 아침, 묵은 김치가 조금 남아 있기에 김치찌개를 끓였다. 돼지고기도 넣고, 캔참지도 넣고, 스팸도 넣고, 양파와 파도 넣고. 걸쭉하게 끓고 있는 찌개에 친정엄마표 고춧가루도 솔솔 뿌려 넣었다. 시큼한 묵은 김치맛을 잡으려 설탕도 한 스푼 투하했다. 온 집에 김치 냄새가 진동했다. 뭐, 집에서 청국장도 끓여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김치 냄새가 대수일까.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

어느새 아이들이 냄새를 맡고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큰 그릇에 양껏 담아내어 주니, 아이들은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이야, 이거 맛있는데? 이사님 좀 드리게 조금 싸줄 수 있어?”


원래 토요일은 쉬는 날이었지만, 본사 일로 출근을 해야 했다. 나는 반찬통을 꺼내 남아있던 김치찌개를 담아 냄새가 나지 않도록 랩으로 한 번 더 씌운 후 도시락 가방에 넣어 남편 손에 들려 보냈다.

퇴근 후 남편이 들고 온 반찬통은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누가 마늘 먹었어요? 사무실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데. 아래 사무실 직원들이 마늘 냄새난다고 난리예요.”


월요일 아침, 출근한 직원이 물었다.

“토요일 사무실에서 뭘 좀 먹긴 했는데 그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요?”

“마늘 조심해서 드셔야 해요. 이탈리아 사람들 마늘냄새 엄청 싫어하고 예민해요. 환기 좀 시켜야겠네요.”


남편과 그분은 그 말을 듣고 멘붕이 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코는 마늘냄새에 정말 예민하다.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학교에 다니는 한국 청소년들의 말을 들어보니, 일요일엔 절대 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마늘냄새 때문이란다.

교실에서 마늘냄새가 나면 중국 학생과 한국 학생을 가장 먼저 의심하며 창문을 활짝 연다고. 그래서 상처를 입은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밀라노에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은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지 7년 정도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김치도 좋아하고, 된장찌개도 좋아하고 심지어 홍어회무침까지도 먹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마늘만큼은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는 남편이 출장 간 틈을 이용해 마늘을 꺼낸다. 그동안 참고 먹지 못했던 통마늘을 구워 먹고, 고기에 싸 먹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출장을 갔다 돌아오면 귀신처럼 알아차린다고 한다. 딸아이 방에서 몰래 먹은 마늘 냄새를 맡고는 한동안은 그 방을 출입하지 않는다나….


마늘과 관련된 한국인들의 에피소드는 이보다 더 많다. 직장 상사가 마늘냄새난다며 대놓고 무시한 경우, 마늘을 먹은 다음날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했는데 그 사람의 몸에서 마늘냄새가 너무 난다며 컴플레인했다는 어처구니없는 경우, 김치를 담글 때 마늘은 절대 넣지 않는다는 사람들까지. 이탈리아에서 마늘 때문에 당한 서러움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감바스나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에 분명 마늘을 넣지만, 향만 낼뿐 한국 사람처럼 먹지는 않는다. 그들은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 음식을 좋아하고, 강한 향신료를 싫어한다. 그래서 덜 읽은 파스타 면을 먹거나 야채샐러드에 올리브유만 살짝 뿌려 먹는다. 이것저것 섞어서 먹는 걸 엄청 싫어하며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리소토를 시켜도 숟가락을 미리 챙겨주지 않는다.


이런 그들의 문화를 알고 나니, 마늘을 싫어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마늘향은 워낙 강해 다른 식재료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마늘로 시작해 마늘로 끝난다.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는 곰이 사람이 되고 싶어서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우리는 마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인 김치가 최근엔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문화가 되었다. 김치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마늘이다.



이렇게 다른 문화가 만나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밀라노에 사는 한국 사람인 우리는 통마늘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싶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위해 참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사람들 역시 마늘냄새가 난다며 코를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정중하게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닭 한 마리를 사다가 백숙을 끓였다. 몸에 좋은 재료를 넣어 삼계탕을 끓이고 싶었지만, 집에 있는 재료라고는 마늘뿐이었다. 잠시 고민을 했다. 마늘을 빼고 맹숭맹숭한 백숙을 끓일 것인가? 아니면 마늘을 쪼끔만 넣어 풍미를 가미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마늘을 아주 얇게 저며 조금 넣어 백숙을 끓였다.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온 남편이 냄새를 맡고 물었다.

“마늘 냄새가 나는데? 뭐 했어?”


어느새 남편도 마늘냄새에 예민한 사람이 되었나 보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백숙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얘들아 양치 잘하고 학교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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