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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4. 2024

아들의 눈물엔 속수무책

사춘기 남매 동거 일기

거실에서 넷플릭스를 보던 두 아이가 옥신각신하기 시작한다. 현실남매 사이에 이 정도의 승강이질은 애교에 불과하기에 모른 척 넘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너 때문에 컴퓨터가 꺼졌잖아. 너 때문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때문에"이다.

최근에 7명과 함께 공저 책 쓰기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2명의 저자가 제때 원고를 보내주지 않았다. 원고 내용을 보면서 피드백을 하고,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데 아예 원고를 보내주지 않으니 화가 좀 났더랬다.

"제가 정말 아이들 때문에 너무 바빴어요."

"제가 연말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정말 쓸 시간 없었어요."

"때문에"는 주장이나 상황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말이다. 하지만 상항에 따라서는 변명이 되기도 한다. 가끔 내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변명을 넘은 핑계로 들리기도 한다.


"야, 홍지안! 왜 동생 탓을 하고 그래? 네가 잘못했으면 잘못 한 거지. 왜 동생 탓을 하냐고. 왜 그렇게 비겁해?"


나는 안 봐도 비디오라고 생각하며 두 아이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런데 큰아이가 그런 나를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한테만 그래. 홍소은이가 내 팔을 밀치는 바람에 종료키를 눌러버렸단 말이야."

나는 멋쩍은 마음에 대충 둘러대며 말했다.

"야,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라고 그래."

"엄마 컴퓨터잖아.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

어느새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거실을 박차고 나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넷째 딸이고 남편은 둘째 아들이기에 우리 둘 다 첫째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특히 남편은 3살 터울의 형에게 많이 양보하고(다른 말로 빼앗기고) 지냈다고 하니, 동생을 쥐어잡는 큰아이보다 오빠에게 매번 양보하는 둘째에게 마음이 기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아이가 욕심을 부리거나 양보를 하지 않거나 동생을 함부로 대하거나 때리면 불같이 화가 났다. 첫째 아이의 욕망이나 억울함을 돌볼 틈이 우리에겐 없었다.



나는 살며시 아이 방으로 들어가 아이 곁에 앉았다. 벌게진 눈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흘러내리기 직전의 눈물을 참느라 애쓰는 모양이 보였다.

"지안아, 왜 울고 있어.... 엄마가 아까 상황을 잘 몰라서 그렇게 말했네. 미안해."

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미안해 진짜. 근데 네가 자주 소은이 탓을 하니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나는 이내 말을 멈추고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지안아, 엄마가 진짜 미안했어. 나는 소은이가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 생각했지 뭐야."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맨날 나한테만 그래."

"내가 또 언제 그랬다고.... 그러냐...."

"맨날 그래. 홍소은이도 잘못했는데 나만 혼내고...."

"내가... 그랬어?"

"응."

"그래... 엄마가 잘못했네. 미안하다. 엄마가 진~ 짜 미안해. 엄마가 '누구 때문에 그랬다'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화가 나더라고. 아까는 엄마가 오해해서 진짜 미안해. 화 풀어. 응?"

"알겠어."

아이의 두 볼을 타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

"진짜 미안해. 화 풀고 그만 울어. 응?"

"알았다고."

"진짜지."

"응."

"그래, 그럼 엄마 나간다..... 사랑해."

"응...."

나는 다 큰 아이를 한번 안아주고 밖으로 나왔다. 휴....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도 많이 울던 아이가 이제는 눈물을 꾸욱 꾹 참는다. 아이의 눈을 벌겋게 익어가는데 눈물을 꼴깍꼴깍 삼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애가 탄다. 슬프고 화나면 울 줄도 아는 어른이 되길 바랐는데, 아이는 어느새 '우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눈물을 참는 아이의 두 눈에 참지 못하고 차오른 눈물이 보이면 나는 속수무책이 된다.

아이의 그 감정이 거짓 하나 없는 상태인 것 같아서, 정말 억울하거나 슬픈 것 같아서, 나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아이 앞에 바짝 엎드린다. 그리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한다.

"사랑해" 하며 포옹을 하는 일이다.


변성기가 시작되어 걸걸거리는 목소리, 인중에 보송하게 난 솜털이 점점 더 진해지고 있는 요즘, 아이는 사춘기의 문턱에 서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여전히 아이 같기만 하다. 누구보다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고, 포옹을 해주면 수줍게 좋아하는 그런 아이.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소리부터 지른 나를 반성하며, 엄마 노릇은 여전히 힘들기만 하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너무 바빠서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이"너무 바빠서"라고 핑계처럼 뱉어낸 그 말들이 변명이 아니라 진심 어린 근거였음을 인정했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생각대로 재단하고 판단했던 나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역시나, 엄마 노릇만큼이나 책 쓰기 강사라는 역할도 힘들다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힘들어도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뿌듯함도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자리도, 책 쓰기 강사라는 역할도 힘들다는 핑계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근거였음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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