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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2. 2024

아이가 자라는 속도는 엄마의 마음에 달렸다.  

사춘기 남매 동거 일기

12월 27일이 생일인 아들이 드디어 12살이 되었다. 한국에 살았다면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으로 꽤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프랑스 학교는 입학식도 졸업식도 없다. 우리 학교의 고등학생들은 고등학교에서 마지막 시험을 본 후, 자기들끼리 물총싸움을 하면서 노는 게 전부이다. 작년엔 비누거품과 물감을 섞은 물총이 등장하긴 했다.


아들, 지안이는 지난해 9월에  밀라노 프랑스 학교의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 5년, 중등 4년, 고등 3년 과정이기에 한국 보다 1년 정도 더 빠르게 중학생이 된 것이다.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한 학교에 있지만,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시스템은 확연히 다르다. 교장 선생님이 다르고,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고, 아이들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예를 들어서 초등학생들은 학교에 등록한 보호자 외에 다른 사람이 절대  픽업할 수 없다. 만약 다른 친구집에 놀러 갈 경우엔 담임 선생님께 미리 편지를 써야 한다.

하지만 중학생부터는 학년 초에 부모님이 사인을 하면 스스로 학교를 나갈 수 있다. 또한 급식카드가 발급되어 카드가 없을 경우엔 점심을 먹지 못한다. 등하교 시간에도 학생증 또는 스케줄 노트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그동안 아무런 책임 없이 학교 생활을 했던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자마자 부여된 여러 책임과 의무에 약간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등하교 시간이 매일 달라서 학교 프로그램인 pronote에 접속해 시간을 확인해야 하고, 숙제 또한  pronote로 매일매일 확인해야 했다. 아이 스스로 어플에 접속해 숙제를 확인하고, 제출하고, 모르는 것은 선생님께 이메일로 물어보고, 숙제를 이메일로 제출하는 등 초등학생 때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어렸을 적부터 워낙 겁이 많았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니 확연히 달라졌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잠도 못 자던 아이가, 절대 자기보다 먼저 잠들지 말라고 밤마다 신신당부를 했던 아이가,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탈 때 혹시나 나쁜 일이 생길까봐  걱정했던 아이가, 조금씩 독립적인 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3시에 수업을 마친 지안이가 4시에 끝나는 동생을 기다려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집에 가려면 지하철과 버스를 타야 하는데, 내가 두 번 왔다 갔다 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청소년용 무료 교통카드를  만들어 지안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혼자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도록 했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지안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그 일을 좋아했다. 자기 스스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겁 많고 소심하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혼자 버스 타고, 지하철 타는 일이 한국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밀라노에서는 굉장한 일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말도 잘하지 못하는 한국 아이가 혼자 대중교통일 이용하는 일이니, 그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수학 선생님의 출타로 인해 8시에 시작해야 할 수업이 10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너 혼자 버스 타고 가볼래?" 라고 물었다. 아이는 고민도 없이 흔쾌히, "그래, 알았어. 혼자 가 볼게."라고 말했다.


아이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엄마로서 가지는 양가감정이었다.


빨리 커라~ 빨리 커라~ 주문을 외우듯 살았는데,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너무 빨리 커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주문을 너무 많이 외웠나?

절대 서운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허전하고 뭉클하다.



"아이에게 책임을 알려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책임은 가르치는 일이라기보다는 넘겨주는 일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엄마라는 이유로 대신해 주던 것들을 자라는 아이에게 때맞춰 하나씩 넘겨주는 겁니다.
책임을 넘길수록 몸은 가벼워지지만
마음은 무거워져요."

<시의  언어로 지은 집 187p, 허서진, 그래도 봄>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던 이유는 바로, 책임을 넘겨서 가볍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거워진 마음 때문이었나 보다.


여전히  엄마의 보호를 받는 아들로, 때론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양쪽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라는 아이가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날이 되면 또 얼마나 마음이 허전할까....

그러니 이제는 조금 천천히 커라~ 천천히 커라~ 하고 주문을 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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