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맞서 살아가기
“경험하고 투쟁하고 깨어지고 비틀리며 그렇게 살아가기”
종종 sns의 짧은 클립들을 보다보면 그가 생각하는 인생의 관점이나 고통에 빠져있는 나를 위로하는 응원의 말들이 많이 보인다. 최근에 본 한 영상에서 '호기심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라는 첫마디로 나를 멈추게 했다. 마음의 소리가 들렸을 때 그것을 좀 더 귀기울여 듣고 실천하라는 얘기였고 나의 무기력에 그 말은 단비처럼 와닿았다. '그것이 아무리 힘든일이라 할 지라도'. 뒤에 붙은 그 말은 나에게 용기를 낼 기회를 줬다. 여전히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있는 나를 삶에 가까운 쪽으로 이끌어나가 줄 수 있을 것 같던 그 말은, 사실 현실에서는 종종 좌절되고 있다. 디스크를 앓는 나의 몸과 몇 년의 칩거생활로 떨어진 체력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책상 앞에서 하는 일들은 웬만하면 할 수 있었지만, 바깥에서의 일은 그것과는 달랐다.
저번 글에서 '내 글을 보아주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는 말을 썼다. 진짜로 그렇게 여긴다. 라이킷을 한 사람들의 이름이 뜰때마다, 그것이 스쳐지나가며 습관적으로 누르는 것인지 내 글을 읽고 무언가를 느겨서 누르는 것인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내 호기심이 끊기지 않게 만든다. 요즘은 브런치보다는 소설에 더 집중하고 있다. 글쓰기의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예전부터 끓어오르던 열정을 되살아나게 했다. 몇시간이고 글을 쓴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고친다. 일상의 소재든 꿈 속의 소재든 그저 쓰고 별로면 문서함에 일단 쳐박아 둔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여행을 가기엔 돈이 없고 체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짧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곧 바다를 보러 갈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포한의 상생의 손을 보러 갈 것이다. 나에게는 먼 예정이 될테지만 나를 태워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미뤄왔던 나의 '최애'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언제인지, 어떤 방식인지 아직 전혀 구체화된 것은 없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머리로 올려보내는 이 열정이 나에게 움직일 희망을 준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역경의 삶에서 고통을 견디며 묵묵히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한다. 저 멀리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는 것이 아닌, 방파제가 되어 거센 파도를 맞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나는 파도에 잠식당하지 않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