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ㅇ처,랑

사랑하지 않는 이유

by 온이로

한번 망가져 버린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한번 구겨진 것은 펼쳐도 구김이 남는다. 한번 엎지른 것은 닦아도 이미 그곳에 베여있다. 나의 자궁이나 성대나 연애나 삐뚤어질 데로 삐뚤어진 마음 같은 것들. 이미 감염되었고 이미 갈라졌고 이미 잘못된 방법을 배웠다. 이 못돼 빠진 인간 하나를 그 누가 사랑으로 온전히 감싸줄 용기를 가지고 대해줄 수 있을까. 드라마는 그래서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달콤하다. 망가진 나를 발견해주고 구겨진 나를 펴주고 못돼빠진 나를 참아주고 나의 창에 찔려도 피 흘리며 참는다. 세상에. 사랑이란 게 참으로 얼마나 대단한 감정이길래. 귀찮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이고 힘들다는 게 머리의 이유이고 무섭다는 게 마음의 이유이고. 나의 모든 것이 그와 공유되는 것이 두렵다.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 그 순간이, 나를 힘들어하는 당신의 표정을 보는 그 순간이, 그리하여 나를 떠나버릴 당신이 두렵다.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그런 상처는 뒤따르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는다.


참으로 무수한 사랑을 했다. 학교 앞에서 사왔던 병아리도, 나의 성을 뜻하는 버드나무도, 어릴 때 끌어안고 자던 노란 토끼인형도 모두 사랑했다. 그때처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기억나는 어린시절부터 사람이 무서웠다. 갑자기 돌변하는 엄마가 그랬고, 뒷담화를 하는 친구들이 그랬고, 애인의 마음이 식은 것이 보일 때 그랬다. 예전에는 '내가 주는 사랑'에 보답이 없어도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을 맘껏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망가졌다'는 표현은 애인이 생겼던 첫 순간 부터인 것 같다.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가 진짜의 나를 알고 나서 떠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일들은 무수히 많이 반복되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람도 '진짜' 나를 알고 나면 도망칠 것 같았고 나조차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것 같다. 나를 구원해줄 단 한 사람. 나를 이해해주고 나의 모든 것을 받아 들여줄 단 한 사람.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해해주고 이해해가는 과정이 있을 뿐. 상담 중에 그런 말을 들었다. '자신만 위해주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다'는.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워도 다 받아들여주고 다 지탱해주는 오로지 나를 위한 사람이 존재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백마 탄 왕자님일까?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믿고 살아간다. 어떠한 것이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부모와 연인과 친구 만이 아닌, 그림이나 글이나 파란 하늘 같은 것을 사랑하고 자신의 취미와 일상을 사랑한다. 사랑하고 싶은 욕구, 사랑 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그것들을 나 외의 다른것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 사랑은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이루어진다. 그것이 구겨진 것이라던가 삐뚤어진 것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저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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