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햇살

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해

by 온이로

‘봄날의 햇살’


‘지는 순간 까지 아름다운 해’


드라마의 대사 속 말이다. '너는 봄날의 햇살이야.' 내가 되고 싶은 것이봄날의 햇살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머릿속을 맴도는 그 말은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는 나의 마음에 꽃을 피웠다.

저 말을 뭔가 간추려서 좌우명처럼 쓰고 싶은데, 요즘은 좌우명이라는 말 안 쓰려나. 난 오글거리는 게 좋다. 간질거리고 조금은 부끄럽고 누구보다 솔직한 말들 말이다. 진지한 것도 좋다.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은 강인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생각나는 것을 이건 너무 진지해보여, 이건 너무 오글거려, 하며 검열하다보면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 말을 글로 옮기는 것은 더 힘든 일이 될 것이다.


해를 좋아한 적은 별로 없었다. 여름을 싫어하는 나에게 해는 뜨겁고 너무 눈부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해는 언제나 강렬히, 아주 매섭게 나를 감싸온다. 그 열기로 나의 고통을 녹여내버리기라도 할 듯이 작열하는 열광을 뿜는다. 해는 나에게 파괴적이며 창조적인 양면적 존재이고, 거기서 파생된 햇살이라는 해의 열광은 그것보다는 미적지근하고 무해하지만 그 뿌리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꼭 봄날의 햇살이어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봄은 생명의 탄생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더욱이 겨우내 짧아졌던 해의 길이가 길어진다. 햇살은 그 존재감을 키우고 생명들은 그를 받아들인다. 언제나 차가울 것만 같던 공기를 따스하게 만들고, 언제나 얼어있을 것 같던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다. 그들의 차가운 손과 발은 햇살로 따뜻해질 것이고, 연두빛 잎사귀가 피어오르는 모습으로 그들을 감동시킬 것이다.


봄날의 햇살도 좋지만 그렇다고 여름의 모든 햇살이 싫은 것은 아니다. 초여름, 혹은 늦여름의 햇살도 좋다. 물론 그냥 햇살이 아닌 바람이 선선히 부는 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파리 사이로 비치는 햇살 말이다. 봄의 햇살이 망망한 초원에 드러누워 온몸으로 쬐고 싶은 부드러움이라면, 여름의 햇살은 조금이라도 닿을 면적을 줄여야하는 매서운 것이다.


지금은 여름이다. 늦여름이나 초가을로 불리었을 시기는 한참 지났지만 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이러다 가을이 오고 여름의 햇살이 사그라들면 겨울을 날 작정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다시 봄날을 기약한다. 봄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이유는 찬란하도록 짧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 그 자체는 겨울을 견대낸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달콤한 보상같은 것이다.


언제나 햇살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또한 다른 이들에게 햇살처럼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의 위로와 배려가 그들로 하여금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겨울의 추위를 벗어나게 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 태양은 햇살을 뿜어 우리를 따스하게 만들다가도 지는 순간에는 슬퍼지는 색을 뿜는다. 파랗던 하늘에 노을이 두리우면 구름은 그 빛을 머금고 분홍색이나 주황색으로 변해간다. 해는 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답다. 햇살의 따스함을 간직 한 채 지는 해는 점점 밤의 차가움에 몸을 내려놓는다.


봄날의 햇살, 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해. 봄날의 햇살처럼 사람들을 위로하고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나는 봄날의 햇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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