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형을 잃어버린

by 온이로

성장하지 않았다. 전혀.

어린 시절 듣던 어른스럽다는 소리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른스러워라. 어른스러워라. 하고 주문을 거는 것 같았다.

난 내 나이같은 적이 없었던 것만 같다. 16살의 아이인채로 그대로 몸만 낡아가고 있다.

케이크는 부서졌고. 녹아내렸고. 그렇게 원형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맛만 좋으면 됬다고 자기위안을 한다. 잘먹었다고. 그래도 예뻤다고. 웃어본다.


서른번째 생일이 어느새 지나가있다. 30년이나 세상에 발 딛고 있었음은 참 믿기지 않는 일이다. 유난히 오늘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보잘 것 없는 몸뚱이와 이력서의 빈 경력 칸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선택해서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암울하다. 남 탓을 해도 그들이 내게 보상해주진 않는다. 삶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어떠한 선택을 하고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고, 그런 것은 결국엔 내 것이다.


서른번째 생일은 생일파티를 했다. 작년의 외로운 생일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동호회사람들을 불러다 케익을 사고 초를 불었다. 3,0. 숫자초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핑크빛 케익은 흘러내리고 있었다. 생크림이 비닐 포장 밖으로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모습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포장을 뜯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만 같은 모양새였다. 사람들이 접시와 쟁반을 가져와 흘러내릴 것에 대비했다. 천천히 포장지를 뜯는 순간, 겉의 크림이 약간 녹았을 뿐이었던 건지 예쁜 케익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인공인 내가 먹지 못하는 케익이라고 슬퍼했지만, 그들이 먹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생일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언제나 어른스러워야한다는 아니, 어른스럽다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으로 범벅된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그때 하지 못했던 반항과 철없는 짓들을 지금 벌이고 다닌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이가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16살인 그때와 서서히 늙어가 제 나이를 찾아가고 있는 지금은 나 자신은 물론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바뀌고 있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지만 나는 이제야 홀로서기를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새끼 새들이 둥지를 떠났을 때, 나는 버려진 둥지 안에서 빗물을 마시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견뎌왔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밖엔 없었다. 어미새를 기다리고 다른 보호자를 찾았다. 이제는 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둥지에 사는 것은 진작에 치렀어야 할 일이고 이제는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을 나설 때라고 말이다.


매년 생일이 지나갈 것을 믿는다.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다음 생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음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긴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상하지 않게 나의 냉장고에 잘 보관해서 다음 생일에 온전한 케익으로 내보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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