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포기할 시간이다

리트리버 인간

by 온이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매우 슬프게도 말이다. 살아갈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더 남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엔 이르다. 가장 빠른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한다. 나의 의지를 위해 -그러니까 나의 신념과 사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게으름을 포기할 시간이다. 게으름을 포기할 시간. 삶의 안 쪽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생명을 느끼고 그것을 쉼 없이 내뱉는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상상하지 말자. 오늘보다 하루라도 더 나아지는 나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끼자. 아주 작은 변화부터, 혹은 장대한 계획의 초기단계로써. 지금은 행동할 때다.


아주 최근에 쓴 일기이다. 근래의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이다. 감정의 폭도 크지 않고, 그 깊이도 조금 느낄 정도이다. 삶에 대한 희망 따위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점점 많이 만나면서 그리고 점점 많이 행동하면서 나는 외롭고 우울한 삶에서 벗어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리트리버라고 말한다. 사람 좋아 인간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들으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릴 적부터 고민해 오던 인간의 감정과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나에게 각자 다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어쩌면 괴로움만이 가득했던 -그렇게 여기던- 과거가 여태까지 잘 견뎌왔다고 말하며 주는 선물 같다. 여전히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지만.


나는 과학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나서서 읽지는 않지만 과학에 대한 인간의 탐구는 본질적으로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런 노력은 철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독서모임에서 최근에 시간에 대한 책을 다루었다. 시간이 어떻게 '점핑'하고 어떻게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지에 대한 것들도 재밌었지만, 책을 선정한 친구가 작성해 준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다 같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을 때 옆에서 "데카르트적 사고네."하고 한 친구가 말했다. 데카르트라는 이름만 알고 있는 나는 그게 뭔지 전혀 몰랐다. 다음 말에는 '칸트'적 사고라고, 그다음 말에는 '플라톤'적 사고라고 했다. 그냥 '나 자신'적인 사고일 뿐인데. 거창한 이름이 나오는 것이 왜인지 부끄러웠다. 그 친구는 철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내 얘기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뻤고, 그에 대한 일종의 존경 같은 것이 생겼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느끼는 좋은 점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의 경계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도 있지만, 가장 행복한 건 나를 수용해 주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차원이라 불리던 시절의 나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트리버라고 나를 부른다.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도 그에겐 이해할 수 있는 면모가 있을 것이고 아무리 다정하던 돌변 한다 해도 그에겐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사람이 좋다.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는 것,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 가치를 알아간다는 것. 모두 나에게는 매우 사랑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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