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바다
손 위엔 많은 것이 있다. 기쁨과 조용한 바람, 갈매기 같은 것들. 마주 보는 두 개는 마치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듯하다. 하나는 인간 세상의 것들을 짊어지는 손. 다른 하나는 자연에서 뻗어 난 손.
나는 포항을 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미곶에 있는 상생의 손을 좋아한다. 중학교 3학년 즘 내일로 여행을 계획하고 이곳저곳을 고르다 포항에 가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우리의 일정표엔 포항에서 물회 먹기라고 한 줄이 늘어났다. 우리가 갔을 때도 상생의 손은 관광지였으므로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배차시간이 긴 버스를 타고 도착해서는 아주 큰원형의 건물이 보였다. 문을 열었다. 그때의 바람과 손. 그리고 더 멀리에 있는 손. 그때부터였다. 틈만 나면 상생의 손을 보러 갔다. 이름도, 언제 지었는 지도,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 지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것 하나는 확실했다. 내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파도 바람에 이끌려 나를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과했다. 내게 보이는 손을 마주 보고서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를 지나쳐 양손의 그 사이에 홀로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 두 손 사이에 눌려 사라지고 싶었다. 감정의 요동, 흥분.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라는 양, 바람과 파도는 양손의 손은 다시, 또다시, 계속해서 나를 관통했다. 모든 생각을 비우고 모든 긴장이 사라지고 손사이에 늘어진 나를 상상했다.
나는 사실 그 두 손은 매우 다른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한쌍의 두 손은 아주 닮아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땅 위의 손은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눈앞에서 나와 같은 햇빛을 맞으며 나의 손길을 받아준다. 황동-인지는 모르겠지만-특유의 닳아 맨들 해진 자국들이 보인다. 낮의 그곳에는 깊이 해가 비친다. 인증샷을 위해선 눈을 가리고 빛의 속도로 찍어야 하는 약간의 귀찮음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바다 쪽에 있는 손을 보기 전 들르는 곳이라고 생각될 것만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 손은 중요하다. 그 손은 마치 지구를 떠받드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지구, 곧 인간이 존재하는 영역을 품어주는 따뜻함의 손이다.
바다의 손은 손가락마다 갈매기의 배설물로 뒤덮여 있고 갈매기의 쉼터로 이용된다. 바닷가가 아닌 곶인 이곳은 직접 만지거나 가까이서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앞에 서서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바다의 푸름, 하늘,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 가끔 앉아 있는 갈매기, 아이들의 비눗방울 따위의 것까지. 나도 인증샷을 하나는 찍는다. 위치는 항상 다르지만 내가 언제 어떻게 그 손 둘을 보러 갔었는지 추억하고 싶어서 이다. 바다의 손은 이토록 인기가 많다. 나도 돌 구석에 앉아 아주 옅은 소리로 노래를 듣는다. 그러면 제대로 '힐링'이 된다. 바다의 손은 바닷물과 배설물들로 원본의 소재가 거의 소실되었지만 그래서 더 오래된 멋짐을 자아낸다. 난 꼭 이것이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곳에 생겨난 이후부터 그 손은 자연에서 뻗어 난 손. 자연과 융합되는 그런 손이다.
논외의 이야기인데 호미곶에는 등대로 이용되던 등대 박물관이 있다. 종종 들르는 이곳은 그 거대함과 웅장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처음 봤을 때는 등대지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작년부터 아직 포항에 가지 못했다. 포항 러버는 나로서는 안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자주 가면 질리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전혀 질리지도 않으면서도 더 많은 기회에 봐두어야 오지 못할 때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대답한다. 징그럽다, 대단하다, 별말을 들어 상관없다. 난 두 개의 손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