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기대어 산다는 것

by 온이로

빨래를 한다. 처음으로 통세척 세제를 사서 써뵜다. 조금은 더 깨끗해졌을까? 모르겠다. 세탁기의 안을 볼 수 는 없으니 말이다. 새로 산 인형과 오래된 가림막 천을 세탁하고 세제의 시원하면서도 달큰한 향을 맡는다. 사라지지 않은 더러움이 있겠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통세척이라는 기능을 매번 세탁기에서 보면서도 한번 해볼 생각을 않았다. 새집, 월세방이지만 오래살집. 통세척은 청결함을 챙기는 것과 동시에 세탁기를 처음 사용하는 나의 의식이었다. 평소의 나는 그저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어나가기에 바빴을 뿐. 세탁기의 청결함이라는 것은 내 신경 밖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세탁을 담당하는 부분이 더러우면 어떻게 세탁이 깔끔하게 되겠는가. 요즘 세탁기엔 많은 기능이 들어간다. 건조가 함께 되는 것이 많고 조용한 모드, 아기옷 모드 등 타깃층의 니즈에 맞추어 세탁기는 날로 발전한다. 사실 그런 세탁기는 자취생에겐 사치다. 탈수 때면 빌트인에서 튀어나올 듯이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9kg짜리 세탁기. 우리 집의 세탁기가 좋은 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집을 떠나면 온다.


올해로 10년, 나는 어머니 집을 떠나 살았다. 고향에 산 전도 있었지만 다른 집에 살았고 대학 때도, 일을 할 때에도 명절이나 생일이 아니고서는 갈 일이 없었다. 30살이 되어 다시 엄마의 집 안방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색한 일이었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끔찍이도 미워 마다하지 않던 어머니. 어머니와 화해 아닌 화해를 하고서야 어머니의 집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같이 산다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까. 기대어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고난과 역경을 함께 헤쳐나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삶 속에 놓인 수많은 일들을 공유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그런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일까? 나는 가정학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학문적인 범위에서는 알 수 가 없다. 그저 내 추론으로는 그저 삶을 서로 붙들어 주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서로 삶의 영양제가 되어주는거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때는 은근히 많다.


어린시절 가끔 오는 엄마 집은 항상 잠이 오는 곳이었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놓을 곳. 이제는 그 집이 다시 내 집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직하게. 그런 일들이 우리 집에서 벌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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