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의 세월
모든 헤어짐은 슬프다. 아무리 악연이었을지라도 그 속엔 어떤 추억이 깃들어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행복한 추억이 많은 인연이었다면. 그러나 헤어짐의 슬픔도 한순간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그뿐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 만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쭉 친구로 남은 친구가 한 명 있다. 등하교를 같이 하고, 방에서 비밀들을 공유하고, 미성년자 때 몰래 술을 마시곤 하던 그런 사이. 서로의 애인들을 다 알고 서로의 일 얘기를 다 들은 그런 사이. 거의 매일을 그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족에서 셋째 딸 역할을 했던 그런 사이. 그렇지만 그는 지금의 내 곁엔 없다. 죽었다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그의 일을 하며 아주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성정이 약한 사람이라 소심함이 기본이었던 데 반해 그는 아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기본이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고 아주 논리적으로 말을 했다. 어쩌면 독한 모습이 있는 그는 나를 이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언니 같은 존재였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내게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고 몇 년을 같이 했다. 네 명이 있는 단체 채팅방은 나를 심심하게 하지 않았고 소속감을 들게 했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무척이나 힘들었을 무렵-고소를 진행하고 일을 그만두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던-에 그는 항상 내 옆에 있으면서 내가 듣고 싶던 위로를 해주고 내가 내고 싶던 화를 대신 내줬다. 아픈 나에게 벅차기만 한 현실적인 일들을 처리해주고 나의 일종의 징징거리는 말들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여자친구와의 다툼이 심해지고 입원이 계속 반복되면서 그는 조금씩, 나도 모르게 지쳐갔던 것 같다. 그가 싫다는 것은 하지 않았고 그가 하라는 것은 다 했던 나에게 어느날 그는 애인과 헤어지라고 했다. 애인과 나의 다툼이 자신을 너무나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겐 둘 다 소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진 빚이 너무도 컸기에 나는 애인과 헤어지겠노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그는 연락이 되질 않았다. 전화에도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불안이 커졌다. 그가 이대로 나를 버린다면.이런 생각에 애인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나와의 인연을 일절 끊어냈다.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그가 이 결정을 철회할 일이 없을 것임을 잘 알았다. 채팅방을 나갔고 팔로잉을 취소했다. 간간이 애인에게 연락을 들었다. 그뿐이었다. 몇 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와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꿈에 나온다. 어떤 때는 나를 증오하는 모습으로, 어떤 때는 나를 다시 받아들여주는 모습으로. 정말 아무일도 없었던 때의 모습으로. 그래도 지금의 나는 그 없이 살고 있다. 그와 계속 친구로 지냈다면 어떤 미래가 되었을까하고 생각해보긴 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미래일 뿐이다. 그저 그와의 추억을 미화시키거나 폄하하지 않으며 인생에 그런 인연이 있었구나를 되돌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