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을 위한 글

글로 적는 것의 힘

by 온이로

글에 쓰여지는 말들은 머릿속을 맴돌던 말뿐이 아닐 것이다. 나의 무의식이, 혹은 나의 영혼이 간직하고 있던 세계가 쓰여지기도 한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머리를 채울 때면 한참이고 글을 쓰곤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나는 의심한다. 이것이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정리되지 못한 말들을 지껄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지만 어떻든 간에 나는 글을 쓴다. 그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브런치는 흔히 서양에서 먹는 일반적인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메뉴들을 섞어 먹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것을 아점이라고 불렀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늦은, 점심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각. 내가 먹는 스파게티가 딱 아점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먹는 사과는 위를 일깨우는 하나의 도구이고 배를 채우는 용도의 스파게티는 보통 10시나 11시에 먹는다. 메뉴가 스파게티인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저 모니터를 보면서 한 젓가락을 입에 물고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써보라 몇 년째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말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몇 편의 글을 게시했다. 과거의 일기를 소재삼아 쓰는 컨셉 상 서랍장 안에 쌓인 옛날 공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일기를 정리하며 괜찮은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핸드폰에다 옮겨 적었다. 그러던 중 한 장 정도의 편지를 발견해 읽었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너를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났어. 그전부터 너는 사랑하길, 사랑받을 수 있길 바랬어.’ 그런 말을 읽고 있었다. 당연히 그 글이 어떤 사람에게 보내는, 보내진 않더라도 쓰는 그런 편지인 줄 알았는데, 맨 마지막에서야 슬퍼지려 했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편지조차도 남에게 쓸 수 없다. 나에게 편지를 쓰다니 이상하다.' ~에게 이후로 써져 있는 그 마지막 문장이 나를 울렸다. 그 공책만은 버릴 수 없었다. 나란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수 없는 그런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가 그의 마음에 어떤 위로나 응원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란 인간은 변해있다. 조회수도, 라이킷도, 구독자수도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한 명이라도 나의 편지를 받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 글을 쓰게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릴 적부터 바래왔던 소설을 쓰고 싶었다. 쓸데없는 강박에 갇혀 사는 나는 무엇이든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내가 소설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내가 소설을 쓰고자 하는 바램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푸는 목적이 아니었나?’ 그 생각에 미치자 되는 대로 글을 썼다. 그저 손이 움직이는 대로 말이다. 재밌었다. 어떤 날은 배고픔도 흐르는 시간도 잊었다. 16년 동안 한 가지만을 하며 항상 재능에 대한 집착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에 정녕 열정을 품었던 것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했다.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말리는 이도 붙잡는 이도 없었다. 아니, 있었더라도 뿌리쳤을 것이다. 소설을 써보기로 작정한 이상 최대한 많은 글을 읽어야 했다. 어머니는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를 추천해 주었다. 초반을 읽으며 SF적인 요소들이 나를 심드렁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책이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가 추천해 준 책이 항상 성공했음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소설을 한 번 읽기 시작하자 글을 쓸 때처럼 시간감각 없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다음 읽을 책을 떠올렸고, 독서모임에서 읽는 책도 읽었다.


그러던 언젠가부터 필사를 하고 싶어졌다. 강박을 한 번 더 벗어나보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필사를 위한 예쁜 노트와 볼펜, 필사용으로 나온 아크릴 판 같은 것을 사려고 고민하다가 흥미가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번엔 그저 글을 썼던 것처럼, 그저 글을 읽었던 것처럼, 그냥 해보기로 했다. 순간 예전에 샀던 데미안의 표지가 있는 필사용 노트가 생각났다. 중고책을 사러 들른 서점에서 적당한 볼펜을 샀고 그 길로 집에 와 필사를 시작했다. 나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나의 글씨체는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원본이 옆에 있는데 알아보든 알아보지 못하든 무슨 상관인가. 데미안은 처음 초등학교 때 읽은 이후로 네다섯번은 족히 읽은 책이었다. 그 유명한 구절을 항상 생각하며 알을 깨고 신에게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노트의 첫 장에 이름을 적고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를 하는 동안 오른손은 저려왔고 팔랑이는 종이를 붙드느라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데미안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 읽으며, 노트에 옮겨 적으려 깊이 기억할 때마다 왜 데미안이 그토록 와닿았는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순간부터 지나지 않을 것 같던 암흑이 언젠가 걷혔음을 깨달았다. 짧은 과거의 나는 무료함을 달래려 잠을 자고 꿈속에서 방황했다. 잠에 들지 못할 때가 되면 그저 멍하니 누워 음악을 들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땐 나의 투쟁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을 영원히 깨지 못한 채로 삶을 연명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도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지는 않다. 그저 투쟁하는 모습이 보인다. 투쟁을 힘든 고행의 길로만 여겼으나 그 안에도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지금의 투쟁은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것이다. 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과거의 세계를 깨기 위해. 진정한 자아를 가진 나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신에게로 날아가 자유를 찾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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