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the race
마라톤
인생은 가히 마라톤에 비유할만하다. 구간별로 적절한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과 시기마다 마땅히 찾아오는 고난을 이겨내야 하는 점, 단기적 관점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하고 하나씩 풀어내야 한다는 점 등이 사람의 인생과 매우 유사하다. 특히 "완주"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인생과 일맥상통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삶을 완주하는 게 어렵듯이 마라톤도 누군가 응원해 주고 함께 달려줄 때 완주의 가능성을 더 높여주는 것이고 이를 위해 인생에서처럼 수많은 연습 과정을 겪으며 견뎌야 했던 인고의 시간을 잘 버텨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서 보낸 2025년, 짧게는 한 해이고 길게는 서른네 번째 해인데 성공적으로 달린 한 해로 기록될 수 있을까?
역주행
올해 나는 사업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당연히 0에서부터 시작했으니 한동안은 도약 외에 퇴보할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업력이 쌓이면서 몇 차례의 구조조정과 사업의 확장, 사건 사고 등에서 비롯된 주가 조정과 같은 단기적 등락은 있었지만 장기적으론 우상향 했다. 젊기에 패기는 넘쳤으나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그 젊음이라는 추진력을 활용한 폭풍질주의 연속 끝에 연료가 고갈됐고, 엔진에 이상이 생겼으며, 소모품이 달아버린 나머지 하프 구간즈음에 뒷걸음질 치게 된 것이다.
일보후퇴 이보전진
두 걸음을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을 후퇴하는 게 합리적인가? 왜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되는데 세 걸음을 낭비하는가? 올해를 맞이하기 전까지 나는 최선의 효율, 가장 이해타산적인 선택, 궁극의 합리성에 기반하여 오직 최상의 이성적 판단만 무한히 반복하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앞선 30년의 삶은 이러한 가치에 제법 부합하게 살아왔다. 어지간한 오차는 다 계산할 수 있었고 대다수 예측대로 됐기 때문이다. 종종 계획과 달리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임기응변으로 대처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른 전의 삶은 나만 잘하면 되는 편에 가까웠으나 서른이 넘은 시점부터 사업, 결혼, 육아 등의 인간관계 특유의 정치 공학적 복잡성에 의거하여 무엇 하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는 게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가장 이해타산적인 게 딱히 이해타산적인 게 아니기 시작했고 최선의 효율이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더 이상 효율적인 게 아니게 된 것이다. 10km를 주파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42.195km를 완주할 수 없었다. 무한대로 발전하고 확장하며 탄탄대로에서만 내달릴 줄 알았던 내 계획은 페이스 조절 실패로 인하여 올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수정했고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를 감행해야 할 한 해로 올해를 상정했다.
피트인
F1을 보면 "박스 박스"라는 말과 함께 정비소로 들어간다. 피트인이라 불리는 이 전략은 레이싱에서 엄청 중요하다. 피트인 하면 단기적으로는 20초 이상 손해를 보지만 마모된 타이어를 갈아 끼울 수 있어서 장기적으론 득이 된다. 그래서 경기 시점과 현재 순위, 상대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피트인해야 한다.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자면 재충전이다. 나는 올해를 안식년으로 삼아 재충전과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해로 자평한다. 정성 들여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서서히 무너져내려 가는 걸 지켜본다는 건 제법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마모된 타이어로 완주하는 리스크를 감수하다가는 후반부에 리타이어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유럽으로 떠나보기도 하고 낯선 모임에도 참여하며 평생 안 해본 것들을 그냥 한번 해보는 한 해를 보냈다. 액셀만 밟다가 처음으로 브레이크도 밟아보니 왜 적절한 브레이킹이 필요한지 깨닫게 됐다. 과열돼서 속도가 안 날 땐 억지로 액셀을 더 밟는 게 아닌 잠시 멈추면 된다는 것을. 번아웃은 노력하여 극복하는 게 아닌 자연스레 회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생은 오직 목표를 달성했을 때만 유의미한 게 아닌 과정 속에서도 배우고 즐겨도 된다는 것을.
결승점
인생에는 직진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론 좌회전이, 때론 우회전이, 때론 유턴이 더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앞 차가 서거나 빨간불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살아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만나는 장애물들을 전부 각개격파하는 게 능사가 아닌 것처럼. 교통법규만 잘 지킨다고 운전을 잘하는 게 아니듯이 상황에 맞는 유연한 움직임이야말로 진정한 고수가 아닐까?
올 한 해 사업적으로는 다소 부진했을지 모르지만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는 게 인생이다. 돌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해보다 얻은 것 또한 많은 한 해이다. 무수히 많은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할 수 있어고 일을 줄인 덕에 사랑하는 딸의 성장을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때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걸 깨다를 수 있어서 그렇다.
이 모든 걸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알아간다는 건 행운이다. 내가 지나가고 있는 이 구간, 인생 전체에서 어느 지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방식만이 아닌 약간은 다른 방법으로도, 혹은 전혀 다른 방식도 활용할 줄 알 때 결승점에 조금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산책
나는 평생 기록 단축을 위한 런닝만을 달려왔다.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을가에 대한 고민만 해온 셈이다. 논술 전형 출신답게 글을 쓸 때도 정형화된 답을 최대한 논리적이고 간결하게 쓰기 위한 것만 고민했다. 오직 합격 혹은 수상을 위한 전문화된 훈련을 받다보니 이 외에 것은 무의미했다. 어느 날 문뜩 찾아간 글쓰기 모임. 그 곳에는 전혀 다른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누구도 합격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 자신 나름의 방식대로 자기의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소싯적 달리기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왕년의 선수가 동네 런닝 모임에 우연히 참가하여 전혀 다른 방식의 달리기를 알게 된 셈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을가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산책하듯 런닝을 즐기고 있었다. 한참 달리다가 멈춰서 꽃을 본다던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던가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어가기도 했다. 폼도 엉성하고 몸도 만들어지지 않은 엉망진창의 사람들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아무렴 어떻든 그저 즐기며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