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새해가 되니 큰 글씨로 2026년과 한자로 된 병오년, 그리고 당해 연도에 해당하는 육십 간지 그림이 대문짝만 하게 1면에 실린다. 나는 선거철 외엔 보통 경제면만 읽는데 새해에는 보너스로 신춘문예가 함께 와서 읽을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신춘문예는 매년 새해를 맞이하는 루틴 같은 것으로 나는 문학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문학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데도 문과대학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이맘때만 되면 막 나온 따끈한 떡국같이 하얗고 깨끗한 느낌의 글에 흥미가 간다. 특히 신춘문예라는 우리나라만의 신인 등용문 체계가 흥미로워서 독자로서라도 참여하는 게 의미 있고 당선의 영광을 함께 나누는 것만 같아서 더욱 몰입이 된다. 그리하여 매년 흰 눈이 내린 새해 아침마다 탱글탱글한 귤을 까먹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과 미묘한 긴장감을 안고 당선자들의 간단한 소감을 읽은 후 단편소설을 읽어봤다.
<가챠, 가챠>
최근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본식 뽑기방이 있다. 짚게로 잡는 인형 뽑기가 아닌 그냥 500원짜리 동전 몇 개 넣어서 돌리면 나오는 투명한 플라스틱 뽑기 말이다. 말 그대로 무엇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나올 확률은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 짜릿한 희망을 주는 일종의 도파민을 구매하는 행위이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집세 이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2030 청년들인데도 1회 5,000원 하는 무작위 확률에 기대어 미신 마냥 운을 믿고 살아가는 모순적 상황을 풍자한다. 극 중 화자는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본인이 뽑히기를 기대하는 삶 또한 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는데 마치 현대의 청년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 않아 한편으로 그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팔자 고치기 힘든 이 시대에서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오히려 자포자기한 것처럼 살아가는 내 주위의 삶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 같을 때가 빈번하다.
<산타랠리>
12월 24일을 기점으로 새해 1월 2일까지 증시가 상승하면 산타가 왔다고 한다. 연말 보너스와 새해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로부터 비롯되어 증시가 오를 때가 있는데 사실 지난 70년 평균을 내보면 이 기간 증시는 1~2% 정도 오른 수치에 수렴한다. 즉, 통산적으로 수익이 난 기간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대단한 상승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손익통산하여 당해 연도 세금을 산정하는 미국의 금융 세법 때문에 물린 주식을 해가 바뀌기 전에 처분하여 손실을 확정하고 감세하는 전략을 취해서 이 기간의 수익률이 엄청 높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뽑기와 다를 바 없는 막연한 희망에 기댄 채 낮은 확률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집단적 확증편향에 걸린 존재이다. 글을 쓰는 이 시점에 봤을 때 결국 3년 연속 산타는 오지 않았다. 3년 연속 산타가 오지 않은 경우는 역사상 드물었다는 점에서 내년에는 산타랠리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다만 나는 허황된 꿈, 적당한 삶, 추상적 계획에 쉽게 타협하는 유형에 가까울 수 있는데 올해는 조금은 달라지기 위해 하나씩 변화하고자 한다.
<적토마>
올해는 적토마의 해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충성심 깊은 최고의 말인데 주인인 여포는 그 끝이 좋지 못했다는 점을 가슴에 새기며 올해 나는 달리는 말 위에 타올라서 함께 달려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말이 되어 누군가를 태워주는 존재가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올해는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될 대로 되라는 적당한 운에 맞기기보단 스스로 명확하게 선택하여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한다. 첫 째로는 10년토록 수성구에서만 살았는데 처음으로 중구로 이사를 간다. 중구 인구가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을 정도로 성장 중이라고 하며 신혼부부도 많이 산다고 하니 젊은 기운도 받고 분위기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둘 째로는 10년 가까이 전문가들에게 자산 관리를 맡겼는데 이젠 때가 무르 익기도 했고 전망이 워낙 좋아서 과반 이상의 자산을 직접 운영해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물 경제지도 구독하여 매주 배달받고 있으며 국내 개별 종목도 사서 배운 대로 투자도 해보고 있다. 제미나이도 유료 버전으로 결제하여 매일 부동산과 주식,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언제 어디서나 질문하면 곧장 답을 얻을 수 있어서 편리하고 나날이 스스로가 뚜렷이 발전하는 게 느껴진다. 셋 째로는 몸과 마음을 더욱 다스리자는 차원에서 축구와 미술을 시작했다. 매주 헬스장에서 1:1 PT 받듯이 실내 축구장에서 1:1 축구 레슨을 받고 나를 위함에서는 한국 민화와 감정의 질감이라는 미술을 클래스를 신청했다. 안 해봤던 것들을 하니 설레고 기대된다. 20대부터 신춘문예를 읽으며 긴장되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읽는 이 글을 이해하는 깊이가 깊어졌는지 스스로 확인하게 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속일 수 없으니 작년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올 한 해, 붉은말의 기운을 듬뿍 받아 더욱 선명해지고 붉게 타오르는 그런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