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들

by 박태윤

어느 날 문뜩 바라본 그녀의 모습. 그녀의 모습은 나와 꼭 닮았다. 새벽 수유를 할 때 은은한 조명에 비친 모습은 내 어릴 적 사진과 똑같았다. 서서히 커가며 똘똘해져 가는 맑은 눈, 무언가를 지그시 바라볼 때 나오는 표정, 웃는 모습도 점점 더 닮아가는 것 같다. 항상 생기발랄하고 활동적인데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도 나와 비슷하다. 다만 좀처럼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은 안 닮아야 하는데 그 모습마저 닮아가는 것 같아서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사실 이러한 화는 내 아빠로부터 온 것이다. 아빠는 좀처럼 화를 참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냈다. 그렇다고 분노 조절 장애라던가 일상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또 아니었다. 월급쟁이에 불과했지만 공적으로는 대기업 생활만 30년을 넘게 하며 정년 퇴직했고 사적으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이었다. 지금도 중소기업에 재취업해서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제법 완벽한 아빠였다. 그저 가족에게 화를 참지 못했고 그러한 성격을 그대로 닮은 나에 의해 10년 넘도록 절연당했다. 성인이 되어 10년 만에 아빠를 만났고 그렇게 10년을 명절 정도에 한하여 만나거나 지극히 종종 연락하고 지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이후엔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호텔보단 아빠 집이 편할 것 같아서 조금 더 자주 보게 됐다.


아빠와 나는 성향이 전혀 다르다. 아빠는 질서 정연하고 체계적인 걸 좋아하는 완벽주의자이다. 그래서 평생직장 생활만으로 만족하고 회사가 자기인 것 마냥 복종하며 살아갔다. 그렇게 애사심 넘치는 사람이 그 큰 기업의 주식 한 주를 안 샀고 은행에 빚지기 싫다며 집 한 채를 안 사서 지금도 월급 300 받으며 일해야 하는 불쌍한 면이 있다. 매일 10시까지 근무하고 6시면 일어나서 출근하는 엄청나게 성실하고 검소한 삶은 본받을만하다. 반면 나는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유유자적하는 자유분방한 낙관주의자이다. 나는 도무지 한국식 교육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유학을 보내진 케이스에 가깝다. 수직적인 관계나 상명하복식 사회 문화, 하루 종일 갇혀서 공부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에서는 부적응자였다. 미국에서 살아보니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때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니 창의력이 폭발했고 독창성을 발휘하며 해야 할 일들을 직접 찾고 하나씩 해내는 과정 가운데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사업을 시작해서 자리 잡기 전까지 아빠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성실히 회사 다니는 게 최고의 삶이라고 자주 말했다. 말년에는 인사 채용 부서에서 장으로 일했던 사람이 아들의 타고난 기질도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연대 다니는 아들놈이라고 소개하던 아빠에겐 회사나 학벌이 참 중요한 모양이다. 지금은 내가 대구에서 자리 잡고 사업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연대 나온 아들에서 또래랑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요즘엔 인간 성격 유형에 대해서도 제법 공부를 했는지 손녀의 유형이 어떠어떠한 것 같으니 어떻게 키우라고도 한다. 다행히 손녀의 유형은 날 닮아서 에너제틱한 아이디어형인 것을 아는 것 같다. 이러한 딸을 위해 나는 매일 노력하고 있다. 최대한 함께 하기 위해 일도 줄이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자본 시장에 대한 공부를 통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주고 싶다. 안타깝게도 아빠는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날 잘 키우려고 했을 텐데 그 방식이 딱히 잘 들어맞진 않았다. 나도 내 딸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잘 키우려고 할 텐데 잘 들어맞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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