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개념의 형상화
엄마, 사랑이 뭐야?
라고 딸이 나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 줄 수 있을까? 슬슬 옹알이를 많이 하는 딸을 보며 어떻게 말해줄지 고민이 많다.
연애할 때의 사랑과 부모가 되고 나서 느끼는 사랑은 그 깊이와 크기에서 비교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다른 범주에 속한 개념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 있어서 적어본다.
엄마, 괜찮아?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우리 집 강아지들은(특히 나르) 내가 화장실에 가면 문 앞에서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다 지쳐 누워있지만 시선은 화장실 문을 향해있다. 막달에 가까울수록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비례했는데 나르는 언제든 내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와 주었다. 새벽에도 졸린 눈을 하고 있지만 화장실 안까지 따라 들어와 내 발 밑에서 나를 지켜주었다. 내가 가는 걸음마다 한 뼘거리에 나와 온기를 나누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꽉 찬 감정인지. 주인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복종의 의미일 수 있지만, 나는 이걸 사랑이라 생각한다.
막달 즈음에는 모두 모여 이렇게 화장실 앞을 지켜주었다. 왼쪽 사진은 저 멀리 방문 앞에 나은이까지 3마리가 따라다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나은이가 디스크 수술로 입원해 있어서인지 2마리가 나를 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다.
진통이 오던 날, 낮과 새벽에도 내 곁을 지켜주는 아가들. 사랑이 눈에 보인다면 이 순간들이 아닐까.
딸아, 괜찮아
아기를 낳기 전에는 막연하게 알던 부모님의 사랑이, 아기를 낳고 나니 선명하게 내 일상에 새겨진다.
2024년의 마지막 날과 2025년 새해 첫날, 아기는 RSV에 걸렸고 나는 극심한 근육통과 고열로 밤새 같이 아팠다. 입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아기는 많이 힘들어 보채며 울었고 그때마다 아기를 품에 안고 네뷸라이저에 약을 넣어 쐬어주고 시간마다 열을 재며 밤을 꼴딱 새웠다. 내 몸도 부서질 듯 아팠지만 아기를 돌봐야 하기에 그저 아침이 빨리 오길, 이 밤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며 지샜다. 아침부터 부리나케 딸의 집을 찾아온 친정부모님이다. 눈을 좀 붙이고 쉬라며 아기를 건네받은 친정엄마에게 밤새 아기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어떻게 아팠는지 구구절절 이야기를 했다.
그런 나를 빤히 보더니 엄마는 내게 "니 눈에는 니 딸만 보이지. 나는 내 딸만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몸이 아파서 더 그랬을까 멍함과 동시에 가슴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 울컥 올라와서 얼른 방에 들어가며 눈물을 훔쳤다.
막연하게 받던 사랑이, 이제는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우리 엄마는 꽃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노란 프리지어. 동글동글 작은 꽃잎을 가진 예쁜 꽃은 엄마를 많이 닮았다. 엄마는 축하할 일이 있으면 꽃시장에 가서 직접 꽃다발을 샀다. 지나온 우리들의 졸업식, 입학식과 각종 행사를 예쁘게 해 주었다. 집에 가져온 꽃을 예쁜 화병에 꽂아 집안 이곳저곳에 두는 게 엄마의 낙이었으려나. 아기를 낳고 100일 동안 병원 진료 말고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6월에 출산하고 한여름의 절정을 지나는 중이었기에 나갈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오셨는데 어느 날 생화를 사서 내 시선이 잘 머무르는 곳에 꽂아두셨다. 외출을 하지 못하고 강아지 3마리와 100일도 안된 아가만 보고 사는 딸이 안쓰러웠나 보다. 뭐 이런 걸 사 오냐고 말했지만 엄마의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집에 가고 나서도 꽃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나와 함께해 주는 느낌이었다. '딸아,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사랑은 나라는 존재로 이미 보이는 사랑으로 존재하지만 출산하고 느끼는 친정엄마의 사랑은 마음에 아주 강하게 새겨진다. 훗날 그리워하면 뼈가 아릴 것만 같은 그런 깊고 강한 사랑.
엄마, 사랑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노래가사가 와닿는 요즘이다.
50일 무렵, 아기가 처음 사회적인 미소를 나에게 보여준 날 기쁨과 감동이 눈물이 났던 기억은 잊지 못한다. 마음 한구석이 꽉 찬 느낌과 함께 울컥 무언가가 올라왔다.
19개월 차에 접어든 딸은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지만 아직 몇 가지의 단어만 구사한다. 그 몇 가지의 단어를 조합해서 나랑 의사소통을 하는데 신기하게 엄마인 나는 다 알아듣는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눈, 한 팔로 엉덩이를 받치고 안으면 나를 토닥이는 두 손, 자려고 누운 내 머리에 갑자기 해주는 뽀뽀. 말하지 못하는 아기의 모든 행동은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엄마는 아기에게 이 세상의 전부이니까.
흔히 부모는 아기의 우주라고 말한다. 부모는 원래 우주가 아니다. 아기라는 존재가 내 안에 있는 우주를 꺼내준다.
아기 덕분에 '나'라는 우주는 매일 확장되고 빛난다. 그 우주 안에서 아기도 안정감을 느끼고 매일 자란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다. 세상 모든 부모가 느끼고 있을 그것.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것.
엄마아빠에게, 우리 가족에게 와주어 고맙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