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내가 해야할 일
나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돕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주 보내졌다. 우연의 상황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니 이제는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맞벌이 부모님을 둔 나는 3살 터울의 남동생을 업어키웠다. 무슨소린가 하면 7살짜리 동생의 유치원을 등,하교 시켰고 부모님이 퇴근해서 오거나 늦게 오시는 날에는 저녁을 챙겨 먹고 설거지도 해두었다. 초등학생 때 살던 아파트 초입엔 낮은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겨울이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 오르막에 찬바람 맞을까 한겨울에도 나는 외투를 벗어 동생을 덮어주었고, 항상 동생의 손을 잡고 동네를 다녀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보살핌은 동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동생에 대한 집착이라며 거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줄었지만, 입대하는 날 펑펑 울고 훈련소에 거의 매일 편지를 쓴 나는 내가 봐도 극성이긴 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는 누군가를 돌보거나 챙기는 능력이 발달했다. 모성애라고도 할 수 있고, 오지랖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챙기고 나서 오는 만족감이 있다. 따뜻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원래 체력이 좋지 않은데 내가 해야할 것 이상을 소화하다보니 금방 소진이 오기도 한다. 학창시절 나의 별명은 '엄마'였다. 롤링페이퍼에는 내 이름보다 나를 엄마라고 적은 글들이 눈에 띄었다. 왜 그랬을까. 누군가를 챙겨야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늘 보부상이 되었다. 나눠바를 핸드크림을 챙겨다녔고, 모든 물건은 꼭 하나씩 더 여분으로 가지고 다닌 탓에 가방은 늘 가득차있었다. 적다보니 더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5살 무렵인데 옆집에 형제 2명이 살았고 배가 고프단 그들을 가엽게 여긴 나는 우리집에 와서 냉장고를 실컷 털어가게 해줬다고 한다. 아빠는 그 이야기를 잊을만 하면 다시 꺼내신다. 내가 중3을 졸업할 무렵 우리집이 폭삭 망하면서 다시 가족의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야했다. 내가 고3이 끝나갈 무렵 평생 장애를 가지게 된 아빠의 병원 생활을 재수와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함께 했다. 스무살 어느 무렵까지 나는 학교 수업이 마치면 병원이나 집으로 와 아빠를 챙겼다.
여튼 나는 그랬다. 그렇게 자라왔다. 덕분에 늘 나보단 다른 사람을 챙겼고 보살폈다. 이는 연애에도 적용이 된 점이 우리 엄마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일찍 철이 들고 정을 잘 주고 챙기는 나를 잘 아는 엄마는 나에게 늘 '마음의 반만 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아니, 사람 마음이 칼로 반토막 내지는 것도 아니고 수도꼭지 잠그듯 잠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조절을 하란 말이냐며 반박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의 말이 맞았다. 내가 할 이상의 것을 연애에서도 했기 때문에 연애가 끝나면 후회는 없었지만 껍데기만 남은 내가 안쓰러웠다. 연애만 하면 살이 쭉쭉 빠지는 기이한 현상을 매번 경험했다. 상대의 고생까지 그리고 마음의 짐까지 함께 하려다보니 나를 너무 내어주고 써버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삶을 살아와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내 운명이거니 한다. 그래서 이별이 더 힘든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내 것 이상을 쏟아붓기 때문에 이별하려면 나의 일부를 떼어내는 고통을 감내해야한다. 그래서 섣불리 이별을 고하지도 못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데도 꽤 오래 아픈 시간을 보낸다.
30대 중반이 된 나에게는 가족이 그런 존재다.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고 장담한다. 내 생명의 일부를 떼어내서 도움이 된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그렇게 할 것이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된 남편, 남편과 나를 이리저리 구석구석 닮은 딸, 강아지 가족 셋까지 모두 내가 살리고 키우는 생명들이다.
이제는 나의 일상 자체가 이들을 돌보는 게 주된 업무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 가족이 생기기 전에는 옆에서 챙겨주고 도와주는 정도의 보살핌이지만 이젠 그 힘듬을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아프고 말지, 내가 참고 말지, 내가 하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지내니 지치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건 가족이기에 온가족이 평안히 잠든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잘 보냈구나'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출산을 하고 나니 매일매일이 특별할 거 없이 반복되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오래도록 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가족 모두가 건강하길.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램이자 소원이며 내가 이번 생애 살리고 키우러 온 이유이기도 한 거 같다. 아들 강아지인 나르가 많이 아파 입원해있다. 불안함을 없애려 이렇게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른다. 내일은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든 자리는 모르지만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집이 너무 적막하고 고요하다못해 휑하게 느껴진다. 다시 나의 평범한 우당탕탕 복작복작한 일상을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