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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화 Jan 30. 2023

첫 번째 협업, 파투 나다.

[그림책 <해를 쫓는 아이들> 출판 일지] #04

미안한데, 저 작업 못하겠어요.



 '네? 대체 왜요?' 하는 말 대신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뭐, 그럼 어쩔 수 없죠'하는 체념의 마디였다. 나는 이미 첫 번째 협업더이상 진척되기 어렵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제주도에 자리를 잡느라 바쁜 와중, 우리는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림작가님이 캐릭터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구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창작하는 시간에 외부의 피드백은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긴 연락의 공백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쉐어하우스, 그리고 전셋집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직장 하나를 구했다가 그만두는 삶의 격동을 전부 거친 몇 달 동안에도 연락이 없자, 나는 본능적으로 이 협업이 텄다는 걸 알았다. 남은 건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서로의 결정을 구두로 확정 짓는 것뿐이었다.




 이호테우 해변가 카페에서 오랜 고민 끝에 첫 번째 그림작가님께 연락을 드렸다. 협업 제안을 하는 미팅과 온라인으로 나눴던 대화를 제외하고 처음 드리는 연락이었다. 협업을 깨뜨리는 데에서 오는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어서, 그리고 그래야 서로에게 불편함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가 선택한 연락수단은 통화였다. 파투의 사유는 단순하고 합리적이었다. 첫 번째 그림작가님은 순수미술 쪽의 작업을 주로 하시는 분인데, 순수미술과 그림책 삽화 작업은 분야가 달랐다. 이 사실을 그림작가님은 캐릭터 디자인을 하다가, 나는 첫 번째 그림작가님의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그 정도로 우리는 그림책 작업에 대해 무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덜컥 협업 제안과 수락을 했으니, 어쩌면 협업 파투는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오랜 시간의 연락 공백 속에서 직감이 좋은 우리 둘은 협업이 무산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 덕에 각자 마음 정리를 할 시간도 충분했고, 결정을 번복할 의향도 없었던 지라, 우리는 마치 한참 전 이별을 예감한 연인들이 그렇듯 덤덤하게 관계를 정리했다. 물론 협업이 파투 났을 뿐,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다음 작업을 기약했고, 내가 서울의 단골 카페에 놀러 갔을 때 우연처럼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자는 또 다른 약속을 남기고 통화를 마무리지었다.




 그동안 팀플이나 동아리를 하며 모임이 무산이 되었던 적이 적지 않았다. 무산에는 별별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 모임 내 연애, 일하는 방식의 차이, 열정의 온도차 등등. 모임의 파투가 나의 깊은 상심의 원인이 되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림책 작업이 파투 난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림책은 내가 무조건 출판하고 싶었던 작품이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림작가님의 사정을 이해하였기에(사실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 그어쩔 도리가 없었다) 분노나 서운함은 하나도 일지 않았다. 그저 만나는 인연은 있었지만, 작업할 인연은 아니었나 보다, 하고 단번에 납득하였다. 또 모르지,다른 작업을 같이 할지. 인연의 깊이와 결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걸 그때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마냥 의연하지도 않았다. 분노와 서운함은 없었지만, 작업 자체가 무산되었다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 언제 또 다음 그림작가님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과연 이 작품을 출판할 순 있을까 하는 의심이 겹쳐져 나는 한동안 적잖이 우울했다. 그림책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즈음 제주도로 내려온 목적마저 희미해졌다. 목적지를 상실한, 혹은 목적지로 향하는 지도를 상실한 배처럼 나는 멋대로 이는 파도에 휩쓸렸다. 그 파도는 나의 삶의 풍파였다. 삶이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마음에 드는 관계는 손에 꼽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인연을 골라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마음이 동하는 관계도 거의 없었으므로. 전셋집 하나에 의존하며 제주에서 살아갈 이유를 정당화했다. 번아웃, 혹은 매너리즘에 잠겨 집 안 침대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팔다리가 잘린 채 독방에 갇힌 죄수가 된 것만 같았다. 그 누구도 내 팔다리를 잘라가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그림작가님도 나의 팔다리는 아니었건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진 데에서 오는 무력감은 컸다. 제주에서 무슨 창작활동을 하겠다고. 무슨 경험을 하겠다고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지. 자조하는 시간도 늘어갔다.

 그리고 그 즈음, 두 번째 그림작가님을 만났다.







인연의 깊이와 결은 참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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