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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화 Feb 09. 2023

두 번째 그림작가님과의
협업과 파투

[그림책 <해를 쫓는 아이들> 출판 일지] #05

 두 번째 기회처럼 찾아온 그림작가님은 제주도의 한 극단에서 만났다. 당시 전세집을 구해서 월세로 나갈 생활비가 줄어 여유시간이 늘어난 나는, 카페 알바로 생활비를 벌고 남는 시간에 창작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시시콜콜한 잡담 외에 공통관심사가 별로 없는 알바 동료들뿐인 인간관계와, 혼자 있는 시간의 절대량이 결과물로 이어지는 고독한 창작시간으로 채워진 일상은 외로움을 낳았다. 나는 또래 예술가들을 사귀고자 한 극단에 가입했다.




 하고 많은 동아리 중에 극단을 찾아간 이유는 연극에 관심이 있어서보다는 '희곡' 작품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명강의로 소문난 '독일명작의 이해' 수업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나 브레히트의 희곡선들을 읽으며 희곡이라는 장르가 삶을 보여주는 문법에 흥미를 느꼈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에서 소설보다 제약이 많아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제약이 수많은 '연극적 허용'을 낳는다는 사실, 희곡 특유의 문체나 말투, 과장된 몸짓과 표현 등이 '현실의 인위성'을 '가상의 세계'로 훌륭히 끌어내는 아이러니한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에 막연한 향수와 동경이 있었다. 고대에는 철학과 쌍벽을 이루는 예술 양식이 다름 아닌 '연극'이었고, 그 전통이 은근히 이어진 탓인지 희곡 장르에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들이 많았다.




 희곡작품에 대한 흥미로 극단에 들어갔기 때문일까, 나는 연극 활동과 공연 자체에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개인의 창작시간 확보가 중요한 작가로서, 매일 밤 꼬박꼬박 일정 시간 이상을 투입해서 단체로 모여 연습하는 일정이 버거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무대, 조명, 음향, 의상, 소품 하나하나를 발품 팔아서 모으고, 힘들게 무대 세팅을 끝낸 후 두 세 달 간의 결과물을 쏟아내고, 무대를 철거하고 나면 마치 배우도, 관객도 빈 극장을 보는 것 마냥 허탈함이 일었다. 이토록 순간적인 예술이라니. 이야말로 인생과 가장 비슷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허무함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연극이라는 장르가 우리들이 TV에서 즐겨 보는, 과거 극drama들의 연장인 드라마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맨땅에 헤딩하듯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공연 하나하나를 성공적으로 꾸려가는 청년 단원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받은 덕에 나의 창작활동의 장르에 '희곡'이 추가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또 예술이라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또래들과 교류할 기회가 없던 당시의 내게 극단 은 최소한의 소속감을 마련해주었다. 대학생 시절에나 느낄 법한 동아리 분위기를 대학 졸업 이후에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퍽 괜찮았고, 그 안에서 만난 단원들은 앞서 말했듯 재능이 꽤 뛰어났다. 재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눈이 깐깐한 내게도 단원들의 가능성은 넘쳐났고, 그 중 한 명이 두 번째 그림작가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극의 무상함만큼이나 헛되이 두 번째 그림작가님과의 협업도 끝이 났다. 그 이유는 앞서와 꼭 같았다. 이 그림작가님 역시 순수미술을 전공하여 그림책의 삽화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니 순수미술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것도 같다. 순수미술을 전공하면서도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잘 그리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그림작가님과는 한 두 달간 나름 작업을 진행한 상태였기 때문에 첫 번째 파투보다도 실망과 좌절이 컸다. 첫 번째 파투를 반면교사 삼아 인세를 5대5로 나누자고 약속한 동시에 작업에 필요한 비용도 일부 지불한 상태였다. 작지만 눈에 보이는 보상이 창작활동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킬 것이라고 생각해 예술인 지원금으로 받았던 돈을 쪼개어 준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이번 협업을 통해서만큼은 그림책을 출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두 번째 기대마저도 좌절당하니 나도 모르는 새에 무의식 속에 '첫 번째 그림작가님과의 작업 파투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니', '그림책 하나 출판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어떻게 잘 살 수 있다고', '차라리 내가 돈이라도 많았다면, 처음부터 일러스트를 잘 그리는 작가님과 계약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그림작가님에게 열정과 의욕을 불어넣으려는 귀찮은 작업 없이도 책임감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등등의 자책이 극에 달했다.




 이번의 협업 파투 또한 두 번째 그림작가님의 문제나 잘못은 아니었다. 오히려 첫 번째 그림작가님과의 작업 파투로부터 그림책 작업에 대한 인싸이트를 하나도 얻지 못했던 내 잘못이었다(사실 이렇게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그림작가님이 아니라 나에게 돌려서 생각하는 것이 편했다). 작가님을 구하는 것에 급급해, 그림 작가님의 강점과 포트폴리오를 하나하나 면밀히 검토하며 작업의 결과물을 현실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나의 과도한 낙관성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두어 달 동안 작업을 진척하면서 협업의 결과에 대한 대략적인 예측('이번 협업도 잘 풀리기는 어렵겠구나')은 나온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른 그림작가님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 힘들어 하는 그림작가님을 두고도 의욕만 부추기려 애썼던 나의 고집과 방법론의 오류도 문제였다. 나의 기대는 과도하게 낙천적인 예측에 기반해있었다. 연극 경험이 있어 그림 장면에서의 연출이 뛰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맞았지만, 일러스트 작업에서의 실력과 책임감이 뛰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틀렸고, 덕분에 두 번째 작업이 파투 난 후에 남은 것은 몇몇 참신한 구도의 스케치, 하지만 그마저도 나중에는 활용하지 못할 스케치들과 조금 더 가벼워진 통장, 그리고 제주에서 작업할 사람을 찾는 스스로의 멍청함에 대한 냉소, 그럼에도 아직 놓지 못한 미련 혹은 희망뿐이었다.






낙관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도하게 낙관적인 예측은 좌절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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