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대한 영감을 받았던 순간의 확신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지속되었다면, 사실 두어 번의 협업 파투로 인한 나의 좌절감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영감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그림책의 완성에 대한 신뢰와 나의 고군분투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처음 겪어보는 막연한 상황에 나는 기다림과 좌절을 '기다림'과 '좌절'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다림'은 '적절한 인연이 나타나는 때를 위해 그림책에 필요한 작업들을 미리 다듬는 기간'이(가령 출판을 위한 인디자인 편집 기술을 배운다거나, 그림작가님께 요청할 그림의 세세한 구도를 미리 정리한다든가), '좌절'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함양해야 할 자질인 끈기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년 전만 해도 어려서, 타고난 직감과 최후의 낙천성에 아슬하게 의지하여 표류만이라도 지속하려는 배 같았다.
나의 원래 계획이었던 창작 활동을 제외한 온갖 일들을 헤쳐가며 제주에서의 생활을 꾸역꾸역 버티던 와중, 나는 '제주더큰내일센터(https://www.jdnc.or.kr/)'라는 청년취창업지원센터를 알게 되었다. 2년 동안 한 달에 150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하며, 취창업에 필요한 교육까지 시켜주는, 정말 봉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서는 존속될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은 센터였다. 현재에도 청년들의 생활이나 취창업을 지원해주는 센터가 전국 각지에 생겨나고 있지만, 2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150만원의 지원비와 함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춘 채, 월요일에서 금요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본격적인 관리를 해주는 곳은 없었다. '청년들의 가능성을 제주의 내일로 연결한다'는 슬로건 아래에서 정말 청년들의 가능성을 밀어주는 데에만 집중하는, 현대에 보기 드문 '목적 자체가 순수한' 기관이었다. 현대에는 순수함을 표방하면서 사실 자기욕망만 앞세우는 기관들이 많기에, 센터의 순수성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당시의 내게 이 센터는 제주 생활에서의 유일한 동앗줄처럼 여겨졌다. 만약 이곳에 들어간다면, 생계를 위해 관심 없는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아직 책 한 권 출판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내가 실용적인 기술과 지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외로운 타지에서 방향성이나 뜻이 맞아 협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21년도 하반기에 올라온 5기 모집 공고에 응모했고, 기대는 다시 한 번 좌절되었다. 면접까지는 갔지만 최종 결과에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갈수록 악화되기만 하던 상황에 한계까지 몰렸던 나는 다음 6기 모집까지 약 6개월을 더 버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아무리 경쟁률이 있다고 해도, 나의 이력에 대해 자부심이 없지 않던 내게 모집에서의 탈락은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상처 받은 자존심을 그러안고, 나는 6개월을 악착 같이 보냈다. 마냥 손 놓고 기다리는 대신, 알바와 극단 활동을 병행했고, '해녀의 부엌'을 모티브로 삼아 이머시브형 극을 상연하는 문화복합공간 아이템으로 신사업창업사관학교에도 지원했다. 도시재생센터의 원도심 활성화 지원사업에 참여해 '제1회 일곱개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행사도 운영했다. 이 행사에는 전문가를 초청해 청년들과 회의하는 프로그램이 한 꼭지로 있었고, 이 때 섭외했던 전문가 중 한 분이 당시 제주더큰내일센터의 센터장님이었던 김종현 센터장님이었다.
단언컨대, 인생사 새옹지마이다. 이 6개월의 기간 동안, 나는 개인의 창작세계에서 나와 제주라는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지닌 비전 등 더 넓은 세계를 보았고, 그 덕에 센터에서 열심히 배울 마음가짐을 정비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청년의 가능성'이라는 요건은 충족하고 있었지만 '제주의 내일'이라는 요건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다음 모집을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제주의 내일', 혹은 '사회와 공동체'를 좀 더 바라보게 되었다. 예상보단 길어진 극단 활동을 통해 극작도 시작했고, 지원사업을 수행하며 제주의 청년 예술인들과 문화예술정책에 대해서도 꽤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기수에서 그림작가님을 만났다. 만약 내가 5기로 붙었다면, 세 번째 그림작가님을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해를 쫓는 아이들>의 유일무이한 그림작가님이 될, 세번째 그림작가님과의 만남은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았다. 22년 4월 초, 센터에 입소한 75명의 사람들은 연단에 나와서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림작가님은 자신의 전공을 애니메이션으로 밝혔고, 나의 머릿 속에선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이 연결되지 못했다. 그래서 작은 관심을 보이며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눴을 뿐이다. 이후 3개월의 공통 교육 기간이 끝나갈 즈음, 나는 트리즈 문제해결방법론을 배우던 프로그램 기간 도중 우연히 그림작가님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기대 이상의 실력이었다. 그럼에도 섣부른 기대를 가라앉히려 애쓰며(교육 프로그램 도중 그린 간단한 그림과 그림책의 삽화는 아주 다른 영역이었고, 설령 그림작가님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나의 협업 제안에 응해줄 지는 미지수였으므로), 나는 그림작가님께 최대한 위협감(?) 없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재능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대도, 사회 경험에 있어서 나이는 꽤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그림작가님은 나보다 어렸고, 몇 살의 나이차에서 오는 능숙함으로 어설프고 요령 좋게 그림작가님을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간단한 질문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작가님 그림 좀 보여줄 수 있어요?' 그림작가님은 몇 장 되지 않는 핸드폰 속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림을 본 순간, 나는 아무도 모르는 노다지 광산을 발견한 광부의 희열을 느꼈다. 아무리 오랜 기간을 붙어산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재능을 확실히 알기는 쉽지 않다. 일상에서 재능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드러낼 기회는 드물고, 사소한 신변잡기식 대화에서 재능의 실마리가 튀어나오더라도 그 깊이와 폭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협업할 사람을 찾는 사람들이야말로, 한 사람이 힌트처럼 보여주는 재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그 재능의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길거리에서 연예인을 캐스팅하는 캐스팅 디렉터들처럼 말이다. 일단 가능성을 봤으면 명함을 내밀어야 하고, 그 뒤에 그 사람의 가능성과 역량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본격적인 대화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당시의 나는 앞선 두 번의 협업 실패로 인해 조금은 더 신중해진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그림작가님의 그림실력은 충분히 확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일은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고, 인세를 5대5로 나눈다는 조건 외에 내세울 것 없는 나를 그림작가님께 설득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림작가님께 글을 먼저 보내드리고, 흔쾌한 반응을 조마조마 기다렸다. 삼일 뒤 그림작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그림책 같이 그려봐요!
흔쾌한 수락. 이번 작가님만큼은 실현될 수 있는 약속일까? 기대는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던 나는 당황하여 재차 물었다. '제가 당장 줄 수 있는 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흔쾌하게 제안을 수락할 수 있어요?' 그러자 그림작가님은 매우 심플하게 대답하였다. '제가 판타지를 좋아하는데 그림책이 그런 느낌이 들어서 재밌을 것 같아요.' 고작 그 정도의 동기가 협업 제안을 수락할 계기가 될 수 있나? 나는 그림작가님의 단순명료함에 놀랐고, 돌이켜생각해보니 그것이야말로 그림책 그림작가로서 가장 정확한 자질 아닐까 싶다.
단순명료한 천진무구함!
인생의 불행이 사실 행운인 경우들이 있다. 그것을 간파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는 '때를 아는 지혜'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