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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Jan 04. 2021

내 나이 40, "엄마 나 힙합 할래"

"이게 마흔이다"-라다 블랭크가 '라디무스 프라임'이 되기까지

*영화 '위아40'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적절한 나이는 언제일까. 누군 40세를 향해 "40살이 별거라고, 인생은 40세부터 시작됐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40세의 독신 여자는 나무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벌레의 먹이가 되는 다 익은 열매라고 볼 수 있죠"라고 이야기한다.


30세 이하 30인 극작가 상을 수상한 라다 블랭크는 2012년 이후 극작가 일을 쉰 뒤, 한 학교의 연극 수업 강사로 일을 시작한다. 다이어트 음료를 마시며, 히잡과 비슷한 두건을 둘러쓴 라다 블랭크는 자신의 친구인 아치에게 "제발 나 좀 도와줘라"라고 말하며 지루하고 각박한 현실을 꾸역꾸역 버텨낸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뭘까" 라다 블랭크는 자신의 월세를 위해  학교에 나서고, 솔직하지 못한 자신의  극 수정 요구에 눈물을 흘리며 죽은 엄마를 찾는다. 그러다 우연히 스쳐 지나간 힙합 한 구절에 라다는 거울을 향해 자신의 외침을 내뱉는다. "이게 40세다"라는 구절을 반복하며,  '40세' 만이 가능한 라임과 스토리텔링이 담긴 랩을 뱉어내고 비트 메이커인 D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메이커D와 함께 선 무대에서 랩을 제대로 뱉어내지 못했고, 무력한 현실로 돌아오게된다. D의 연락을 거절하며 극작가 활동을 시작한 라다는 연극 '할렘가'를 연출하며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연극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이 가진 '신념'에 반하는 일임을 앎에도, 그는 초연을 위한 드레스를 입고 연극 앞에 나선다. 연극 '할렘가'가 실제 미국의 '할렘가'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음을 앎에도, 그 이유를 설명해낼 수 없다. 흑인 감독을 외치는 라다의 의견을 묵살했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분노하는 흑인 주연 여성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백인의 입맛에 맞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라다의 분노를 자아냈고, 초연 도중 상반된 흑인과 백인의 표정 역시 "이 공연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라고 느낄 수 있게 한다. 머리의 두건을 벗어던진  라다는 "극작가는 이딴 쓰레기 같은 작품은 쓰기 싫어한다"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랩을 무대 위에서 뱉어낸다. 자신의 두려움과 예술가인 엄마에 대한 자부심, 신념을 팔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무장한 그가 내린 선택은 힙합이었다. 'FYOV' 외치며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뱉어내는 것.


이 영화의 포인트는 흑인과 백인의 이야기를 '극'이라는 요소를 이용해 인종 차별을 논한 예술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백인 여자의 거기는 흑인 남자의 가정을 파탄 내는데 이용되니까"와 같은 영화 초반 등장하는 학생들의 말, 흑인은 교육을 덜 받았다는 선입견에 반항하는 비트메이커 D, 흑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 '우모자 극장' 속의 파격적인 연극 제목들은 할렘가가 우리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흥미로운 지점은 라다 블랭크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한 여자의 성장을 다룬다는 것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라다 블랭크는 실제 뉴욕 출신으로 'Mixing Nia(1998)'을 통해 영화 출연 이후 TV시리즈 'The Backyardigans'를 통해 작품으로 각본으로 데뷔한 이후 'The-Forty-Year-Old Version'(위아40)을 통해 첫 장편 연출을 맡게 됐다. '위아40'이 실제 그의 이야기라는 것이 더욱 실감 나는 대목이다.


특히나 이 영화는 35mm의 흑백 필름으로 관객은 이 영화에서 누가 백인인지, 누가 흑인인지 구분할 수 없다. 단지 단 한 번 라다 블랭크의 연극인인 '할렘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간간한 모습, 라다의 과거 모습만 색을 입힌 채 처리될 뿐이다. 마치 '프란시스하'가 떠오르는 흑백 영화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 백인과 흑인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하거나, 혹은 더 뚜렷하게 만드는 작업을 거친다.



그리고 영화에 삽입된 그의 오빠의 나레이션이 끝나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할 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는다. 예술가였던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 진정으로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길을 걸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힙합'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에 늦은 나이는 없다. 다만 변명이 필요할 뿐. 자신의 꿈을 돌고 돌아 찾은 라다는 지하철에서까지 가사를 쓰는 열정이 있었고, 자신을 의심하기 전에 무작정 D앞에서 랩을 뱉어낼 만큼의 용기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만한 열정이 없기 때문에 매번 꿈에 대한 막연함을 마주하진 않을까. 라다가 그린 40세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27살인 내가 이때까지 일 해왔던 분야와 전혀 다른 곳으로 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한물간 40세 극작가'의 힙합 이야기에 끌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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