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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Jun 24. 2021

담백한 관계, 그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콜라보'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하는 것.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의 장점을 빼내어 진행하는 일을 의미한다. 지금의 '콜라보'라고 불릴 수 있는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는 왜 세상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지를 이야기한다. 


흑산도에 떨어지게 된 정약전과, 그곳에서 오랜 삶을 살았던 창대는 계급도 살아온 인생도 확연하게 달랐다. 그들이 서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가까워지는 상황은 적절한 유머, 웃음 포인트와 함께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창대가 느꼈던 차별적인 부분들이 복선과 같이 깔려지며 이 이야기는 단순히 두 사람의 힘으로 어류도감을 만들어 내는 서사가 아님을 암시한다. 


영화에서 나타나게 된 계급, 사회를 빼고 오로지 사람 정약전과 창대에게 집중해보자. 오랜 기간 각자의 삶을 살아간 그들이 갖게 된 가치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설득력 높은 전개들을 통해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담백하게 그려낸다. 만나기 전부터 각자에게 필요가 높았던 그들은, 만남 이후 서로가 서로를 보충하며 살아나간다. 물고기에 대한 지식을 알고자 했던 정약전, 배움이라는 갈망 속에 있었던 창대. 정약전의 대사, "내가 아는 지식이랑 너의 물고기 지식이랑 바꾸자, 이건 거래지 돕는 게 아니지 않느냐"를 통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평등한 관계에서 오는 나아가는 인간에 대한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평등함이 깨졌을 때, 갈등은 절정을 향해간다. 선비와 배움에 동경이 있던 창대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세상이 바뀔 것이라 자신한다. '서적을 외우는 방식으로 망해버린 나라'라는 정약전의 대사와는 대조적으로 '임금이 곧 이 나라를 지킨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창대는 학문을 익히며, 양아버지에게 부름을 받고 가족과 함께 흑산도를 떠나게 된다. 정약전은 이미 창대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 그를 보내고 만다. 창대는 더 높게 날아오르고 싶었던 걸까, 정약전을 떠나 누리지 못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걸까.


흑산도를 떠나 뛰어난 실력으로 벼슬자리에 앉은 창대는 본래 자신의 위치였던 수많은 아랫사람들과 마주한다. 터무니없는 세금을 붙이며 자신의 손으로 백성이 살 수 없는 나라를 만듦을 깨닫게 된 창대는 그제서야 자신이 바뀌어도 이 나라는 바뀌지 않음을 알게 되고 흑산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시간은 정약전에게도 똑같이 흐르고 있었다. 창대의 도움 없이 그는 아픈 몸으로 '자산어보'라는 도감을 완성하였고, 이는 돌아온 창대에게 전해지며 영화는 절정에 다다른다.


창대라는 인물이 가진 배움에 대한 욕망과 선비 자리에 대한 동경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정약전이 추구했던 방향이 진정으로 옳았던 것일까? 영화는 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결국 잃은 것은 과거의 나, 그리고 사람이라는 것에 집중한다. 왜, 우리는 결말에 이르러 창대에게 몰입하며 영화 자체로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는 내가 갈망하는 것이 옳고, 추구하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과 부딪히고, 싸움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그 싸움을 끝냈을 때 결국 상처를 입은 사람은 나였으며, 과거에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었던 사람마저 잃었을 때의 허탈함에 공감하는 것이다.


정약전은 왜 유배지에서 생물 도감을 만들었을까. 창대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정약전에게는 '도감을 만들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흑산도로 유배를 와 가장 순수한 것에 몰입했던 정약전의 모습은 시간으로 잃어버리고 더렵혀진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다시 치유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물고기, 생물, 생명이라는 보편적인 것에 몰입하여 자신만의 가장 순수한 글을 만들어낸다. 결국, 영화 <자산어보>속 창대와 정약전의 만남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접점’이 아닌, 결국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으로 흐르는 방향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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