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책 제목처럼 나의 글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었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무관심'이라는 명사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곤 했다.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에는 똑같이 무관심으로 응징했지만, 우연히 보았던 지하철 참변 영상 속 시민들의 무관심한 모습과 도로에서 무자비하게 맞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보였던 무관심한 모습을 보며 비난하곤 했다.
3년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만 보는 사람들, 하지만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간간한 목소리에는 고개를 쳐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관심'도 하나의 '덕목'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됐다.
엄청 추웠던 날, 나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화해가 하고 싶어 앉아있던 벤치에서 나는 하나의 지갑을 발견했다. 그 지갑을 무심코 열었던 나는, 민증 속 아파트가 바로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남자의 지갑을, 그래도 집이나 우체통에 가져다줘야겠다는 일념을 가지며 그를 기다렸다.
다투긴 했지만, 그는 매번 그렇듯 추위에 떠는 나를 위해 후드 집업을 가져왔다. 나는 그런 그에게 지갑을 내밀었다.
"오빠, 이거 지갑 땅에 떨어져 있는 거 주웠는데 보니까 바로 앞동이더라고. 가져다 놓을까?"
나는 정말이지, 당연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굳은 표정을 하며, "뭐, 무슨 지갑? 어디서 주웠는데?" 하며 내가 앉았던 벤치로 향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그냥 그 자리에 놔둬"하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 지금보다 많이 어렸던 나는 오빠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게 "왜? 가져다주는 게 맞는 거잖아. 그 분집 바로 앞인데, 문 앞에 두면 알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한숨을 쉬어대며, 고민했다.
결국 그와 나는 눈앞에 보이는 그 동으로 향해,
엘리베이터를 타기에 이르렀다. 사실, 내가 그곳을 올라갔는지 그가 그곳을 올라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였던 것 같다.
내려와 1층에서 우리 둘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벨 눌렀는데, 아무도 없더라"라고 말하며,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는, 떨어진 지갑 봐도 절대 줍지 마"
그 당시,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더라면, 적어도 우체통에 넣어주거나 집 앞에 놔주거나 했으면 더 고마웠을 것 같은데
그 지갑이 고양이에게 먹힐지, 강아지에게 밟힐지 모르는데, 그래도 뒀다간.
난, "왜?"라고 물었고, 그는 "네가 지금 이 지갑 주워서, 우리가 가져가는 거 벤치 앞에 cctv가 있었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그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가
지갑을 낚아채서 나쁜 곳에 쓰려고 하는지, 주인에게 가져다주려고 가져가는지 그 사람이 알 거라고 생각해?"
생각해보니 그랬다. 정의의 사도처럼 굴었던 나는,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것도 오빠를 시켰던 겁쟁이 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은, "내가 왜, 너 대신 올라가야 돼?"가 아닌 그 가정을 모두 감싼 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지갑의 주인집 문 앞에 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가정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나의 의견을 들어줬다는 게 고마워진다.
옳은 감정인지, 그른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살면서, 때때로 그 지갑과 같은 순간을 떠올린다.
내가 그 지갑을 손으로 잡음으로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일들
남의 물건, 남의 상황, 남의 인생에 내가 끼어듦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많은 상황들.
그를 만나기 전, 혹은 사회생활을 하기 전이었다면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여러 일들을
"내가 엮임으로 피곤해진다"라고 생각하며 그것들과 멀리하기로 한다.
그것이 나의 시간과 노력을 지키는 정당방위일까?라고 물으며, 삶에서 여러 순간 곳곳에서 그의 말을 떠올린다.
눈앞의 지갑을 무시하고 지나가야 맞는 순간들이 여러 번 겪다보면 난 어느 새 진짜 나서야할 때와 나서지 않아야할 때를 분별치 못하는 어른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나를 향한 일말의 불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