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조각집 - 03
용서의 감각 - 나를 미워했던 순간을.
대답을 찾지 못한 감각입니다. 만약에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어서 이 글을 누르셨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지금, 저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처럼 ‘용서’가 어렵거나 하기 싫은 분들은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상태는 유쾌하거나 통쾌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괜찮은데 저는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용서를 하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마음에 생채기를 내더라도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어떤 날에는 제 마음에 도사리는 흉터만큼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하루를 견뎌내고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는데 컴컴한 어둠만 저를 반기고 있을 때, 어둠을 뚫고 연 냉장고 안에 상한 음식만 있을 때 그런 마음이 듭니다. 불쾌함과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들어올 때면 K가 저에게 했던 만행들이 떠오릅니다. 예고도 없이 말이죠. 그러면 문득 K에게 문자가 하고 싶어집니다.
“나는 네가 잘 살지 못하기를 바란다. 나와 학우들에게 저지른 만행들을 잊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그 행동을 합리화하는 너의 입을 막고 싶다. 폭언과 악행을 일삼았던 네가 정말이지 불행하기를 바란다.”
K는 제가 다녔던 대학교의 조교였습니다. 학부 특성상 조교는 졸업한 선배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또한 저보다 10학번이 높은 선배였습니다. 조교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후배들에게 폭언과 가스라이팅을 일삼았고 이것이 모두 우리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자행했습니다. 모두 K를 무서워하거나 불편해했고 누구도 그에게 반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K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오니, 그 당시 위축되었던 저 자신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떨 땐 저에게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어느 날 K는 저에게 ‘너는 요즘 애들 같지 않게 똑똑하다’며 개인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이후로 주기적으로 문자가 날라왔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보이)는 선배가 칭찬해주니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입학한 지 30일 남짓인 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학교 근처 카페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영화’에 대한 과외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치 관례인 것 마냥, 조교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하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러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속으로 생각하는 게 저에게 어울린다고 여겼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무서웠거든요. 카페에 갔을 때, 그는 영화에 대한 이런 저런 철학을 읊었습니다. 그러고 영화를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적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추후에 영화를 그만두고 싶을 때 제 손을 잡아 줄 거라 말했습니다. 저는 꽤 열심히 썼습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영화를 처음 사랑했던 순간을 적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그 글을 쓴 이후 K는 저에게 카페에 사람이 많으니 같이 영화를 볼 겸 자신의 자취방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집에 가지 않았고 연락에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K가 이 같은 방식으로 신입생들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조금씩 피했습니다. 저는 그의 집에 가지 않은 대가로 K가 주도한 따돌림과 폭언을 견뎌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학교에 떠돌았습니다. 들리지 않은 척, 보이지 않은 척 침묵을 지킨 채 영화를 공부했고, 찍었습니다. 살아냈습니다. 저를 지지해주는 선배들이 있었고, 안아주는 동기가 있었고, 영화를 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제 노트북에는 “영화를 하고 싶은 이유”라는 제목의 파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열어보진 않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K의 소식으로, 그는 더 이상 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상 그는 조교였을 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식당을 차렸지만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의 노트북에는 ‘영화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적어놓은 페이퍼가 없나 봅니다. 저는 이제 그 당시, K의 나이에 가까워집니다. 그가 선배라는 이유로 늘어놓았던 철학들이 얼마나 우스운지 깨닫고 그런 문장들 속에 묻혀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제가 보입니다. 억지로 웃고 있었을,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떨면서도 밝은 척했던 제가 보입니다. 저는 K를 용서할 마음으로 과거의 저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저를 미워했던 수많은 날의 저 자신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그는 통풍인지 당뇨로 인해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슬프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