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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May 11. 2022

짝사랑의 감각

감각의 조각집 -05

    짝사랑 감각


    저의 짝사랑의 역사는 깊고 오래되었습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상대보다 큰 사랑을 품고 쏟아내는 데 익숙합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친구들을 짝사랑했던 기억이 짙게 남아있습니다. 학교 가기 전날 친구들이 흥미로워할 이야깃거리를 만드느라 작은 머리를 굴렸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열광했으며 친구들의 해바라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그들의 애정이 저의 것보다 작다고 느끼는 날이면 괜히 심통을 부렸습니다. 저는 늘 전전긍긍하며 사랑을 갈구하고 급한 마음을 들어냈습니다. 하물며 현재 애인과도 저의 짝사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짝사랑의 역사 중 몇 안 되는 쟁취입니다)


    대상은 사람을 넘어 물성이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만큼 영화도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애정을 쏟고 좋아하는 만큼 이 녀석도 저를 좋아해 주면 좋으련만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감상할 때는 다정하게 제 곁에 다가와 안아주다가 영화를 만들려고 움직이면 저 멀리 달아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립니다. 영화가 달아난 방향을 보며 슬퍼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합니다. 저의 짝사랑 역사 중 가장 힘든 영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답 없는 사랑’이라고 쓰려다가 지웠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종종 대답은 해줍니다. 어떤 방식으로든요. 


      요즘 들어 짝사랑의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고양이’와 ‘식물’입니다. 2018년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 그녀를 향한 애정도 4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고양이가 한국말로 ‘나도 널 좋아해’라고 하지 않으니 저의 사랑이 쌍방향인지 짝사랑인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 고양이는 표현이 확실하고 말이 많은 편이라 저를 좋아하는지 유추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궁디팡팡-고양이가 엉덩이를 치켜올렸을 때 팡팡 쓰다듬어주는 행위’를 해주면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배를 보여줍니다. 여러 전문가의 주장에 기반해 그 행위가 저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예상해봅니다. 처음 고양이가 저에게 엉덩이를 보였을 때를 기억합니다. 고양이가 저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하고 와-락 껴안았습니다. 고양이는 저의 급한 행동을 나무라듯 앙칼지게 울며 품에서 벗어났습니다. 요즘도 고양이의 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만져달라고 해서 만져주면 물고, 만지지 말라고 해서 떨어져 있으면 와서 비비적거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의 마음을 예상하는 것입니다. 


      식물은 고양이만큼이나 힘든 영역입니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으니 고양이 보다 쉽지 않으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는 울거나 뛰거나 뒹굴면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표현하면 잘 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식물을 사랑하는 만큼 물을 많이 주었다가는 뿌리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 수 있고, 관심을 주지 않았다가는 잎이 타 말라서 죽일 수도 있습니다. 식물마다 좋아하는 햇빛의 정도와 물주기가 있는데, 정작 식물들이 말을 하지 않으니 더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애정을 쏟아야 합니다. 침묵을 지키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마침내 대상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짝사랑의 자세가 아닐까 요즘 생각합니다. 상대가 품은 애정의 크기를 의심하기보다 내 마음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짝사랑의 업그레이드 자세가 아닐까요? 아직 저는 업그레이드 되지 못했지만 고양이와 식물들을 열심히 짝사랑하며 다정한 애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도 언젠가 업그레이드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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