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 시대를 구분한다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고 넘어가자. 시대 구분 (periodizzare)은 시간선에서 비슷한 특징을 가지는 순간들을 한데 모아 묶어 적절한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이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듯한, 뿔뿔이 흩어진 사건들을 관통하는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개념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시대가 언제 피어나고 또 언제 저무는지에 대해선 사학자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두 시대를 구분하는 차이점들 중 무엇을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지에 따라 시간선 위 전환점의 위치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세"란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개념이라기보다 그 긴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고자 했던 이들의 수많은 시도로부터 태어난 문화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사학자들 개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들을 뭉뚱그려 끌어안고 있는 포장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다.
토마스 콜, [파괴], 캔버스에 유화, 1836.
15세기 유럽의 인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고대 문명의 계승자라 여겼다.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금 제 손으로 재현해 내며 한껏 콧대가 높아진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자신들과 고대를 갈라놓았던 천 년의 단절에게 중세라는 이름을 붙이고 침을 뱉었다. 그들은 사계가 돌고 돌며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시간 또한 원을 그리며 반복된다고 믿었는데, 이에 따라 중세를 고대의 황혼-즉 죽음으로 여겼으며 지금 다시 고대가 부활 (르네상스)했다 생각했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 또한 중세를 어둠의 시대라 부르며 멸시했는데, 인본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좋았던 시절로의 회귀 대신 더 밝은 미래로의 진보를 외쳤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다.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선형 시간에 대한 개념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인데, 어느 한 사건 (예수의 탄생, 헤지라)을 기점으로 예견된 종말과 구원이 다가온다는 믿음으로부터 온 것이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 길로 샜는데, 말하고 싶었던 건 아무도 중세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문명은 각자의 리듬에 따라 변화해 왔으므로, 한 공간적 배경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아 구분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잣대를 다른 공간적 배경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줄자를 가지고 와서 몸무게를 재려고 하는 꼴이다. 우리가 중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땐 공간적 배경을 서유럽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곳에서 고대 문명이 잠시 다른 문화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인본주의자들의 손 안에서 부활했으며, 그곳에서 제국이 패망하고 조각나 셀 수 없는 로만-바바리안 왕국들이 자라나기 위한 양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동로마 제국인데, 이는 서유럽에서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들 대부분에 한 발 (또는 두 손 두 발 다) 걸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시작은 언제인가? 이탈리아에서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중세의 시작점은 476년, 야만족 출신 로마군 장수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시킨 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황제의 폐위가 상징하는 바를, 즉 제국의 몰락과 로만-바바리안 왕국들의 난립으로 인한 지배 구조의 변화를 다른 요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잣대는 주관적인 것이므로, 다른 요소 (종교적, 경제적, 군사적 변화)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아래 연도들이 중세의 시작점으로 제안되었다;
313년: 코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자유를 보장한 해.
324년: 코스탄티누스 대제가 보스포루스 해협 근처에 비잔틴 (코스탄티노플)을 세우고 이를 제국의 두 번째 심장이라 천명한 해.
410년: 서고트족 전사들이 왕 알라리코의 지휘 아래 이탈리아 반도를 침략, 로마를 약탈한 해.
622년: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쫓겨나 메디나로 이주한 해.
그렇다면 중세의 끝, 근세의 시작은? 많은 사람들이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상업혁명의 시작을 알린 순간을 중세의 끝이라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1348년: 흑사병의 창궐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소멸하고 경제가 파탄난 해.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켜 고대 로마로부터의 명맥을 끊어버린 해.
1522년: 보름스 의회에서 루터를 소환해 심문한 해. 가톨릭 교회의 분열.
다시 말하지만 시대 구분은 주관적인 작업이므로 위 연도들 중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없다. 그러나 단 하나의 사건이 새로운 시대를 불러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의 폐위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사건은 서로마 제국의 몰락에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제국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된 국경 지대의 분쟁과 과도한 세금 부과로 인한 지역 반란, 군단과 농지에서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 등 수많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황제의 폐위는 그저 상징적인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래서 중세는 어떤 시대였나?
중세 초기에는 고대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변화들이 생겨났다. 기독교가 정식 종교로 인정되고 얼마 되지 않아 제국의 국교로 선정되었으며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가며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중앙아시아에선 훈족이 정복전쟁을 펼치며 주변 민족들을 서쪽으로 밀어냈으며, 이는 "야만인"들이 제국령으로 대거 이주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제국과 이민족들 사이 힘의 균형이 깨어지며 새로운 왕국들이 생겨남에 따라 서유럽의 지배 구조가 뒤바뀌었으며, 서로에게 극도로 의존하던 제국의 각 지역들은 제국이 지중해의 통제권을 잃어버리자 모든 물자를 자급자족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중세 말기도 근세와 차별되는 특징들 (전염병에 의한 인구수 급감과 그에 따른 경제 시스템의 변화, 카톨릭과 청교도 사이 종교 분쟁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두 시기, 시대의 시작과 끝 사이엔 별다른 일이 없었을까?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중세 사람들은 단 한 순간이라도 유일한 문명, 유일한 종교, 유일한 지배 구조 아래 놓인 적이 없었다. 중세는 민족과 민족이 뒤섞이고 부딪히며 한쪽이 다른 쪽을 집어삼키는 격돌의 장이었으며 같은 교리를 놓고 천 갈래로 해석이 갈려 허구한 날 서로 싸워대는 이단 심판의 무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세가 끝없는 전쟁과 굶주림의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이 시대 안에서도 몇몇 전환점들에 의해 시기 (fasi)들이 구분되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중세 초기 (Alto Medioevo), 4세기에서 10세기 사이. 대혼란과 그 이후 점진적인 회복.
중세 성기 (Pieno Medioevo), 11세기에서 1250년 (페데리코 2세의 죽음) 사이. 발전.
중세 말기 (Basso Medioevo), 1250년에서 15세기 말 사이.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 새로운 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