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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 Nov 06. 2024

중세의 목소리

이야기하기, 다듬기, 기록하기

중세 사람들에게 있어 글쓰기는 사치였다. 4세기 초부터 시간이 갈수록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줄어만 갔는데, 이러한 문맹률의 증가는 종이의 높은 가격과 불안정한 공급 (내구성이 좋아 보관에 용이한 양피지는 9세기가 되어서야 아랍 상인들에 손에 유럽으로 들어왔다), 한정된 배움의 기회, 지역 간 단절 등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었다. 13세기 상업혁명 이전까지는 문서 작성에 사용되는 공용어 (라틴어)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토박이말 (lingua volgare)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라틴어 글쓰기는 교회 산하 교육기관과 수도원에서만 전수되었으므로 보통 사람들은 쉽게 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제국의 제반시설이 망가지고 지역 간 연결이 끊어지자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유실되거나 심하게 변형되어 그 지역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남게 되었다. 다양한 글씨체를 한데 모아 정형화하고자 했던 여러 시도들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12세기까지 읽고 쓸 줄 알았던 극소수의 사람들 중 대부분을 차지한 건 사제들과 수도사들이었는데, 이들은 종교적 사건 (성인의 사망이나 기적의 발현 등)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올해 부활절은 언제였는지 (매년 봄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뜬 다음에 돌아오는 일요일), 그리고 제일 중요한 교회의 수입과 보유 자산에 대해 기록하고 그를 보관했다. 아래는 10세기경 제작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한 수도원의 재산 목록의 부분이다;

[Breve recordacionis de monasterio sancti Thome apostoli qui pertinet de sanctae Dei Regiense aecclesiae. Seminavimus in domocoltile de ipso monasterio ex omni genere grano modia L, inde exivit modia CXL, vinum anforas XV; habemus ibi boves IIII cum iuges II, vomeres II, carros II, sappa I, manaria I, secure II, secias III, messores VIII, vascule da vino VII, porcos XXV, recepimus foenum carras XXX; habemus ibi inter ser [vos et a]ncillas maiores et minores LX et Il~]

레죠의 거룩한 교회 소속 사도 토마스 수도원의 재산 목록. 수도원 텃밭에 곡물 오십 자루를 뿌려 백사십 자루를 거뒀으며 포도주 열다섯 항아리를 모았습니다. 이곳에는 멍에 넷, 쟁기 둘, 수레 둘, 괭이와 칼 하나씩, 도끼 두 자루, 톱 셋, 수확용 낫 여덟, 빈 포도주 항아리 일곱, 돼지 스물다섯 마리, 건초 서른 수레가 있습니다.  하인과 하녀는, 성인과 미성년자를 포함해, 62명이 있습니다. 후략.


그러나 시간이 지나 사회가 안정되며 귀족들과 상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록의 제작과 보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지역마다 시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글을 쓸 때 라틴어 대신 토박이말을 사용하는 게 일반화되었으며 다른 이들을 위해 글을 써 주거나 문서의 신빙성을 검증해 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등장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다음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유념해야 할 것은, 중세에 관한 기록들은 제작 단계에서 이미 한 차례 걸러진 "목소리"들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글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은 모두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지식인들, 귀족과 사제들이었으므로  사회의 이면은 어땠는지, 약자들 (여자, 이교도, 노예)의 삶은 어땠는지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북방 민족들에 대해 글을 썼던 뭇 로마군 지휘관들과 의원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전달한 바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때 우리는 먼저 그 내용의 신빙성을 다른 기록과 대조하고 물질적 증거 (고고학적 유물 등)와 비교하며 교차 검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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