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선언

by 김삶
더블린에서 탁월한 태양의 빛을 담았다. 저 빛을 보면서 나는 다짐했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더블린 선언이라고 이름붙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계속 가겠다. (촬영: 김삶)

탁월한 태양의 정기를 받으면서 쓴다. 영국의 하늘 위에서 씽크패드 자판을 두들긴다. 영국 노팅엄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는 45분 간의 짧은 비행. 30분 정도 지나면 나는 더블린에 도착할 것이다. 더블린으로 유럽에 들어와 더블린에서 유럽을 떠난다. 다시 미국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확실히 에너지를 회복했다. 이 기운과 여세를 몰아서 2022년을 마감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걷고 또 걸었다. 더블린 공항에서 시내 숙소까지 걸어갔다. 폭우를 맞으면서 전화기가 맛이 갔다. 짧은 여행 초기부터 조력자를 잃은 셈이다. 씽크패드를 대체재로 삼아서 극한으로 활용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 헤맸다. 구글지도를 띄워놓고 방향을 살폈다. 오프라인이어도 감에 의존해서 길을 찾았다. PC버전으로만 카톡을 쓰면 어떨까. 이번 여행에서 시험해봤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실험은 만족스러웠다. 스마트폰과 동떨어진 삶에 대해서 보다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더블린행 비행기에서 눈을 좀 붙일까 했지만 탁월한 태양의 빛에 압도되어 뭐라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태양은 탁월하다. 유일무이한 존재다. 태양을 닮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탁월한 존재로 우뚝 서기 위해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이번 여행은 결핍에서 비롯된 경험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어지니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래 준비해온 복안이 있다는 듯이 씽크패드로 생존했다. 하루에 3만보씩 걸어가면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구글지도를 펴놓고 가기 전에 길을 예습했다. 지도를 보지 않고 표지판과 건물을 보면서 앞길을 헤쳐나갔다. 해볼 법 하다고 생각한다. 카카오톡을 스마트폰에 깔지 않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겠다. 강한 유혹을 느낀다. 미국에 가서 전화를 고치고 실험을 이어가야겠다.


10분 있으면 더블린에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짧은 시간에 일기 한 편을 뚝딱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유럽에 와서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를 가지 않았다. 잠깐 들어가서 인터넷을 한 적은 있지만 커피나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단식을 실험했다. 다이어트도 할 겸 공복 상태에서 최대한 걸었다. 음식을 줄여야 한다. 유럽에 오기 전에 몸무게가 몇 개월만에 81kg대를 기록했다. 몸을 가볍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각도 가볍고 산뜻하게 지을 수 있다. 여러모로 자극을 많이 받은 이번 여행이다. 내 삶에서 유럽에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꼭 한 번 있었으면 좋겠다. 더블린에 사무실을 다시 여는 것도 좋겠다. 그런 행운이 내게 오면 좋겠다. 계속 가다보면 길이 나겠지.


더블린, 루튼, 노스햄튼, 밀튼킨즈, 노팅엄에서 다시 더블린까지. 빡빡한 일정이었다. 걸으면서 대부분 시간을 소화했다. 걸으면서 에너지를 회복했다. 이제 서성이지 않고 뚜렷하게 앞으로 걸어가겠다. 이번 근무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산술적으로 2022년이 3개월 남았다. 곧 지나간다고 치면 1년 남은 것이다. 1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담대한 마음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겠다. 이 다짐을 나의 ‘더블린 선언’이라고 이름 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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