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아침 사이

by 김삶

다시 캘리포니아의 아침을 맞으며 쓴다. 어제 오후 9시쯤 뻗었다. 월요일 저녁에 하는 한국 시사 프로그램 하나를 걸어놓고 졸았다. 침대방으로 올라가서 바로 쓰러졌다. 자연스레 눈뜬 시각은 오전 5시 40분이다. 며칠 거르고 시작하는 아침루틴 치고 나쁘지 않다. 새벽과 아침 기운 가운데에 내가 서있다. 내 안에 새벽과 아침이 있다. 나는 아침을 여는 사람이다. 나는 새벽 공기를 가르는 인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 북소리>에서 공백의 해를 보내고 다시 태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부분이 있다. 나도 8월과 9월 침체됐던 시기를 보내고 나 자신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새벽과 아침 사이에 공기를 가른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본다. 나아가야만 한다. 아니, 나아갈 수 없다. 아니, 나아갈 것이다. 망설임을 반복하다가 마음을 다잡는다. (촬영: 김삶)

비행기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책을 읽었다. 난독증에 가까울 만큼 문장을 곱씹는 내가 적잖은 분량을 읽었다. 부족한 잠 탓인지 자꾸 정신이 달아나려 했으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장은 나를 일깨웠다. 마음이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미 1세기 이상 전에 소로가 <월든>에서 주창한 내용이다. 내 고민의 해답과 힌트는 이미 오래전 삶을 먼저 산 사람들의 기록에 다 들어있다. 끊임없이 읽고 써나가야 하는 까닭을 되새긴다. 현재 기준, 60세 정도에 은퇴한다고 하면 나는 배낭을 꾸려서 길을 더날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처럼 수년간 걸으면서 기록할 것이다. 그게 꼭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럽도 좋고, 미국 서부의 PCT도 좋다. 쓰고 기록하고 쓰고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되새긴다.


일기를 쓰면서 갑작스레 목표가 하나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한국어 사용자가 되겠다. 조직 안에서 글 좀 쓰는 사람으로 만족할 게 아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뱉겠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여기만 하더라도 많은 기자들이 있다. 기자들보다도 더 글을 잘 쓰는 존재로 각인되고 싶다. 벌레의 눈을 탑재하고 산다면, 벌레의 시각으로 쓴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김훈은 기자 시절에 소설가보다 문장을 잘 쓰는 문학기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기자나 특파원들보다 훨씬 글과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어제 다 쓰지 못한 일기를 이어서 쓴다. 무리하기보다는 가볍게 한 문단 정도만 쓰고 마무리하겠다. 비행기에서 위생지에 쓴 글을 옮기는 작업을 해야겠다. 시차적응이 필요한 걸까? 새벽 2시 반쯤 깼다. 아일랜드와 영국 시간으로는 10시 30분이었겠구나. 어제 고친 픽셀6를 만지작거리다가 오랜만에 새벽에 스타벅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플레젠턴에 24시간 문을 여는 스타벅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제 한번 갈 일이 있을 것이다. 다시 원기를 회복했다. 아일랜드와 영국 여행은 나를 일깨웠다. 올해가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2023년 1월 1일까지 95일 남았다. 3개월 전념할 것이다. 전념의 반문화를 내 삶에 체화할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탁월함을 일깨우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2022년 말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2023년은 도약의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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