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눈과 소의 걸음

by 김삶

어제와 같은 시각에 아침일기를 시작한다. 어제도 오자마자 저녁을 먹고 뻗었다. 8시가 안 된 시점부터 침대에 누워서 바로 잠들었다. 새벽에 이불을 덮고 자지 않아서 깼다. 다시 따뜻한 이불 안으로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결국 눈을 뜬 시간은 4시 20분쯤이다. 어제와 비슷한 루틴이다. 동부시간으로는 아침 7시 20분일 테니 얼추 시간이 맞는다. 여독이 덜 풀렸고 3시간 시차적응도 덜 됐다. 이번 주말을 계기로 캘리포니아 환경에 몸을 맞춰야겠다.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여행을 하고 2킬로 정도가 불었다. 몸이 무거우니 정신도 기민하지 못하다. 먹는 양을 줄일 필요가 있다.


4월 말이다. 벌써 2022년의 3분의 1이 지나갔다. 5월에는 한국출장을 갈 일이 생겼고 6월은 업무를 하면서 휴가철을 기다리다 보면 금방 흘러갈 것이다. 7월과 8월은 그야말로 휴가철이고 9월부터는 하반기에 접어든다. 새삼 시간이 빠르다. 미국생활이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꽤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내 방식으로 현실을 개척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8년을 공백의 해로 정의했다. 이어지는 1989년은 회복의 해였다. 내게 올해 2월과 3월은 공백기였다. 4월은 회복기다. 새벽에 스타벅스에 와서 일기를 쓰고 있는 모습만 봐도 나는 전미투어를 회복의 계기로 만들었다. 5월부터는 도전과 도약기가 시작될 것이다. 회사업무 안팎에서 도전을 계속하다 보면 한 단계 도약한 나를 발견하리라 믿는다.

나는 호랑이의 눈을 뜨고 소처럼 걸으며 나아가겠다. 스산한 뉴욕의 새벽, 도로 한가운데에 한 사내가 섰다. (촬영: 김삶)

1년 3개월했지만 1년 반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빠른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으로 경험을 증명할 것인가? 무엇으로 전문성을 보여줄 것인가? 조사 파트너가 말했듯이 전문성은 글로 남는다. 뉴욕에 갔을 때 후배가 말했듯이 전문가의 증빙서류는 글이다. 내가 이란전문가라고 어디 가서 자신있게 떠들 수 있는 이유도 축적된 칼럼과 출판물 <표류기> 아니었던가? 미국이라고 다를 것 없다. 주제와 분야를 좁힐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라는 무대에서도 정신문화적 측면에 집중한다면 이야기의 실을 꿸 수 있다. 시작은 실리콘밸리에서 실험한 자기혁명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생각한 <혁신의 중심에서 혁명을 외치다>, 지난해 떠올린 <미국에서 반미국적으로>, 올해 생각한 <실리콘밸리에서 홀로서기>는 모두 궤를 같이 한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는 일관성이 있다. 확신을 갖자.


이제 더 이상 서성거리지 않으려 한다. 흔들리지 않겠다. 나를 믿고 나아가겠다. 호랑이의 눈으로 보고 소처럼 걸어가겠다. 어제는 옆방의 동료가 <실리콘밸리 스케치>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비유해 칭찬해줬다. 감사하다. 어쩌면 지향점이 같을지 모른다. 나는 박지원을 닮고 싶고 허균을 닮고 싶다. 닮고 싶은 선인이 있어서 다행이다. 쓰고 싶은 칼럼의 주제가 여전히 많다. 조만간 박인환 이야기도 할 것이다. 금문교의 “THERE IS HOPE”로도 글을 풀어내야겠다. 하고 싶은 말이 늘었다는 건 분명 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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