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에 처음으로 중간에 깨지 않고 잤다. 어제 9시도 되지 않은 시점에 뻗어서 눈을 뜬 시각은 4시 30분이다. 옆자리에 누운 아내를 괜스레 괴롭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밖에 나갈 준비를 한다. 일찍 일어난 김에 사무실 대신 커피숍을 가기로 생각한다. 맥도날드는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집 주변 스타벅스 중에서 높은 테이블이 있는 곳을 가기로 결심한다. 5시 반에 문을 여므로 여유있게 집을 나선다. 5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도 카페에 일찍 도착했다. 5시 25분에 스타벅스 리버오크스점의 문을 당겼으나 열리지 않는다. 안에서는 점원이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하릴없이 아파트먼트 건물 주변을 한바퀴 돌고 온다.
조금씩 리듬을 찾고 있다. 내 삶의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 올해 1월에 <걸어서 실리콘밸리> 프로젝트를 하고 2월 초부터 탄력을 받으려 했으나 마음껏 되지 않았다. 4월 <가족 전미투어>를 계기로 다시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 얼마 못 갈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시도하려 한다. 2월에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충만하다. 매일 아침 기록하는 사람의 자세를 다잡는다. 어제 김삶의 아침일기를 발행하는 것은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일기를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다. <스틸니스>의 라이언 홀리데이가 하듯이 말이다. 이슬아도 하고 박민우도 한다. 나의 차별점은 직장인이자 직업인으로서 계속 쓴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나의 아침일기는 공개와 비공개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내 아침일기가 갖는 독창성은 그 경계선에 있다. 신해철이 문화다방에서 말한 것처럼 편당 10원을 받는 것은 어떨까? 10원이 너무 작다면 100원은? 작은 금액에 상징성을 부여하면서 삶의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실험을 하고 싶다.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다른 회사와 비교해서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온실 속의 화초로 안온하게 살고 있다. 그 안온함에 감사한다. 동시에 온실을 벗어났을 때 나는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실험하고 싶다. 시도하고 싶다. 나의 야생성을 잃지 않는 수준기(水準器)로 글쓰기를 활용하겠다.
지난 두 달은 왜 사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왜 사는가? 답없는 고민을 마주했던 나를 현학적 언어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지금 왜 사는가보다는 지금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다른 말이다. 메멘토 모리, 의식적으로 죽음을 떠올리자. 어제는 사무실에서 여러 도전의 순간이 있었다. 오후에는 방전되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무리해야 할 과업이 있었다. 마감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리더는 자기 자신의 사례로 주변을 이끌어야 한다. 그게 ‘Lead by example’의 자세일 것이다. 현란한 수사나 거창한 언어를 내세우기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악역마저 마다하지 않는 담대함이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을 형성한다. 나는 조직 안팎에서 리더로 올라가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에서 나는 리더십을 연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