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자 마자 사무실로 걸어왔다. 집을 나선 시각은 6시다. 5시 45분쯤 눈을 떠서 어떻게 하루를 시작할지 고민했다. 씻고 갈 것인가, 씻지 않고 사무실로 바로 갈 것인가. 집에서 샤워를 하면 아이들이 깰지 모른다. 살금살금 운동복을 챙겨입고 야구모자를 쓴 채 과달루페 강을 따라 사무실로 왔다. 나오는 길에 둘째의 볼에 뽀뽀했다. 어제 괜히 둘째에게 윽박질러서 미안했다. 학교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둘째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친구 엄마의 말을 듣고 잠시 흔들렸다. 아내가 계속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속상했다. 가장으로서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특히 둘째의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이해하니까 둘째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둘만의 시간을 확보하자.
오랜만에 과달루페 길을 따라 걸었다. 거의 2주 만이다. 걸으면서 명상에 집중하고 싶었으나 내가 보낸 시간은 잡념의 연속이었다. 팀 페리스가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말했듯이 명상에서 연습과 훈련의 효과가 나타나는 건 언제나 최후의 순간일 것이다. 페리스는 20분 동안 명상을 할 때 15분은 마음속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데 쓴다고 했다. 어떤 때는 20분 중 19분 30초를 잡념으로 소진할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명상의 핵심은 정신을 집중하는 데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정신이 흩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후 단 1초만이라도 다시 진리의 말, 만트라에 주의를 집중하면 그건 ‘성공적인 명상’이라는 뜻이다. 나도 30분 동안 걸으면서 몇 차례나 ‘일상생활의 혁명’과 ‘내 삶의 혁신’이라는 과제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오늘 걷기 명상이 썩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라고 나를 위안한다.
긴 휴가를 보내고 나니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제와 그제 모두 새벽 2시쯤 깼다. 중간에 깨서 전화기로 뉴스를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을 차렸다. 루시드폴 음악을 틀고 다시 잠을 청한다. 웬만하면 한국 뉴스는 거리를 두고 싶다. 굳이 업데이트해야 한다면 시간을 정해놓고 주말에 한국 시사프로를 보는 정도면 족할 것이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정신은 한국에 있는 이중적인 삶의 고리를 끊고 싶다. 여기 있을 때는 최대한 미국의 삶에 집중하려고 한다. 현 대통령과 다음 대통령이 내 삶을 바꿔주지 못한다. 내 삶을 다른 이에게 위탁해놓고 내게 유리한 결정만 기다리면서 살고 싶지 않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갈 것이다.
개척자의 마음을 품은 내가 다른 이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어제 민음사 일력 문장은 허균의 말이었다. 울림이 있는 말을 한번 더 인용한다. “벼슬길을 향한 마음은 식은 재처럼 싸늘하고, 세상 사는 맛은 씀바귀인 양 쓰구려. 조용히 지내는 즐거움이 화려한 벼슬길보다 낫거늘, 어찌 즐겨 나의 편안함을 버리고 남을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쓴단 말이오.” 지금 우리 시대의 리더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루하다. 실망스럽다. 나라고 도마에 오르면 다를까? 이제라도 변화해야겠다. 여생의 첫날인 오늘부터 순간순간의 선택과 결정이 나를 규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