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너의 것

by 김삶

한 주를 시작하며 스타벅스에서 쓴다. 어제는 샌프란시스코 당일치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연스레 뻗었다. 리치몬드에서 저녁을 먹었지만 집에 와서 남은 치킨을 해치웠다. 쥐포를 안주 삼아 맥주 두 병까지 마셨다. 시사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아내 무릎에 누워서 소파에서 미적거리다가 그대로 잠에 빠졌다. 물 끓는 소리에 황급히 일어나서 10시쯤 침대로 갔다. 결국 눈을 뜬 시각은 새벽 4시다. 찜찜한 마음에 부랴부랴 이를 닦고 거실에 가서 전화기를 가져왔다. 4시에 여는 스타벅스를 갈까, 4시 반에 여는 스타벅스를 갈까 누워서 고민했다. 결국 서핑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국은 대통령이 바뀌는 시기라 분주하지만 애써 크롬 창을 닫는다. 내 정치적 성향을 떠나 소모적인 소식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 스포츠 섹션으로 이동해 K리그 뉴스를 훑는다. 주민규가 해트트릭을 했다. 황인범은 FC서울에 오자마자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토요일은 동료가 알려준 덕에 손흥민 경기를 이동하면서 봤다. 미국 채널로만 보다가 한국어 중계를 들으니 새로웠다. 손흥민 골 장면도 차 안에서 들을(!) 수 있었다. 운전하느라 볼 수는 없었지만.

뉴욕 퀸스브릿지 출신 나스는 분명 저 다리 밑에서 랩을 했을 것이다. 그는 스무살에 "세계는 너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나의 세계가 있다. 나의 시공간이 있다. (촬영: 김삶)

커피를 한 잔 더 받아왔다. 리버오크스 스타벅스에서 맞이하는 매일 아침이 루틴이 되고 있다. ‘인간은 의미를 만드는 동물이다’는 말을 되새긴다. 명문구를 소개해준 선배님을 이번에 한국에 가서 꼭 만나고 와야 한다. 반환점을 앞둔 내 미국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파주를 꼭 한번 가겠다. 이런저런 계획을 짜면서 활기를 찾는다. 그만큼 내가 외로웠다는 뜻일지 모른다. 1년 넘는 정신적 고립으로 나는 방황했다. 우울감도 느꼈다. 일어나려고 한다. 조금씩 기지개를 켜려고 한다. 어떻게든 작은 불씨를 살리겠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극도로 활용하겠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으로 기억한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기숙학원에서 한두 달을 보낼 때다. 휴일에 나를 찾아온 아버지, 어머니와 잠실경기장에서 프로농구를 봤고 교보문고에 가서 박진영 에세이 <미안해>를 샀다. <미안해>에서 나온 문구를 마음에 담는다. 그가 할렘에서 봤다는 그래피티의 슬로건이다. “Light a candle instead of cursing the darkness.” 내 식대로 해석하면 “어둠을 저주하는 대신 촛불을 하나 밝히라.” 정도가 될까? 모르긴 몰라도 이 문구가 GOD <촛불 하나>의 모티브가 됐을 것이다. 내게도 해당된다. 뉴욕 퀸스브릿지 빈민지역 출신 Nas도 “The world is yours.”라고 했다. 세상을 저주하는 대신 세계는 너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희망을 품자.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희망이 있다. 금문교에서 본 안내판도 “There is hope.” 아니었던가.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일어서자. 희망을 버리지 말자.


기억으로 존재하는 아빠 생각을 하나 갑자기 눈물이 맺힌다. 10년 후면 나도 그 정도 나이가 되겠구나. 내 아버지가 내게 물려주신 유무형의 자산에 감사한다. 한계도 인식한다. 그게 삶이고 운명이다. 내 운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되 내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다. 김삶의 역사는 김삶이 만들어간다. 오늘은 뭘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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