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아침일기를 쓴다. 사무실에서 새로 장만한 기계식 키보드로 처음 글다운 글을 쓴다. 궤도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오늘이 새로운 루틴을 개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제 술을 꽤 마셨고 어제 저녁에 식사를 하고 바로 뻗었다. 양치도 못했고 속이 더부룩해서 12시가 안 되어 깼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벽 3시쯤에도 다시 일어나서 뒤척였다. 결국 몸을 일으킨 시각은 오전 5시다. 아침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스타벅스 리버오크스 지점으로 향했다. 5시 반에 문을 여는 스타벅스가 웬일인지 6시에 개시한다고 했다. 사무실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과달루페 강둑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문득 출입증을 가져왔는지 헷갈려서 가방을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집 식탁 앞 선반에 두고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을 돌렸다.
매일 만나는 맥아리 없어 보이는 젊은 여성을 또 마주쳤다. 어쩌면 거물일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자신의 루틴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동질감이 든다. 한번 사는 인생이니까 내 방식대로 일관성 있게 나아가고 싶다. 집에 와서 씻고 딸, 아들과 장난을 쳤다. 아내는 여전히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차를 가지고 사무실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유소를 들러야 했다. 전날 밤 확인했을 때 기름이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차를 탔더니 타이어 공기압에 또 문제가 생겼다는 불이 들어왔다. 76에서 주유를 하고 코스트코 타이어센터까지 가면 시간이 될까. 그래도 경고등은 빨리 없애는 게 좋은데. 미루다 보면 시간을 내지 못할 게 뻔한데. 주유를 하면서 아침 외국어 수업 하나를 더 잡았다. 7시 30분부터 10분 수업 두 개를 연달아서 진행한다. 타이어센터까지 가서 바람을 넣고 사무실로 가서 수업이 끝난 후 일기를 써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오늘 수업에서는 셜록 홈즈와 그리스인 조르바, 돈키호테를 이야기했다. 나는 세 작품 모두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지만 조르바와 돈키호테 캐릭터에 흥미를 느낀다. 특히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게 각별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문장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영어로 하면 I do not expect any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정도가 될까. 이 문장을 공유하며 마무리한 수업은 어느 정도 운치가 있었다. 그의 묘비명처럼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나아가야겠다. 마지막 문장은 우리말 번역이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자유다’는 영어로 I am freedom 혹은 I am the freedom 정도가 될 것이다. 정관사를 붙여야 할까? 모국어가 아닌 사용자에게 정관사가 가장 헷갈린다. 나는 I am the freedom을 선택하겠다.
어제도 스태프 한 명이 생각지도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에서 온 직원이든 영주하는 스태프든 주관을 갖고 나아가면 좋겠다. 사무실에는 그런 이가 드물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면 좋겠는데. 기댈 수 없는 인물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말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