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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에게

by 김삶

아침일기를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로 쓴다. 딸의 생일에 맞춰서 편지를 썼던 것처럼. 사과편지가 될 것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잤다. 한국을 다녀와서 적응이 쉽지 않다. 단순히 시차 때문이 아니다. 술도 자주 마셨고 새로운 삶과 일의 의지를 구현하는 경로에서 괴리를 느낀다. 내 의도가 온전히 공감을 사지 못할 때 마음이 불편하다. 겪어내야 하는 과정이다. 과정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일이 되어가는 경로’를 말한다. 과정은 결국 일이 되게 만들기 위한 인내의 시간이다. 미국에서 만난 선배가 말했듯이 시간이 흐르고 훗날 뒤돌아봤을 때 나의 퍼즐은 모두 맞춰져 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이 있다. 마음에 확신을 품겠다.


토요일 아침에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주말루틴이 되고 있다. 같이 가라테를 가고 조그만 장난감을 하나 사고 버거킹에 들러서 감자튀김을 먹는다. 순간이 존재한다. 순간은 아들과 내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토요일 오전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점차 쌓여갈 것이다. 둘만이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인식하자. 집에 와서는 뻗었다. 금요일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다. 술도 마셨고. 낮잠자고 일어나서 별 것도 아닌 일에 폭발했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후회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다시 한번 Let bygones be bygones 정신을 떠올린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과거는 과거로 내버려두자. 하지만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은 표현해야겠다. 지금부터는 편지 모드로 전환한다.

갓길을 걷는다. 손을 잡고 걷는다. 옆으로는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살기 위해 우리는 하나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사랑하기 위해 산다. 그저 사랑만이 삶이다. (촬영: 김삶)

"사랑하는 여보야. 미안해. 어제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 몸과 마음이 축 처져있어서 그런지 여보의 말을 곡해해서 듣고 어깃장 놓고 싶었나 봐. 그것보다 소리지르고 과격한 행동해서 더욱 미안해.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 앞으로 각별히 주의하고 더욱 조심할게. 여보가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이만큼 미국생활에 적응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나도 여보 때문에 안정을 찾고 일과 삶에 임하고 있고.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야. 다시 힘을 합치자. 나도 전열을 정비해서 우리 가족의 전진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게. 어제는 내 안의 괴수가 등장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어. 내 안에 수많은 괴수가 있지만 그게 적절한 방식으로 세련되게 표출되도록 잘 달래야지. 그게 글이 될 수도 있겠고. 걷기가 될 수도 있겠고. 어제는 너무 날 것 그대로 내면의 괴수가 등장했네. 어떤 표현으로 여보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나의 사과를 받아주세요."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는다.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게 내 아버지가 가슴에 새긴 일신우일신의 자세일 것이다. 소설가의 서문을 곱씹는다. 박경리는 <토지>를 쓰며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라고 다짐을 나타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을 번역한 뒤에 나는 다시 한 번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존재를 증명하려면 살아가면서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이고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태세를 바로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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