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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회복한 날

by 김삶

미국 독립기념일에 쓴다. Independence Day라고 표현하겠지만 미국역사를 잘 모른다. 내 나라의 광복과 독립의 차이에 대해서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다음달에 다가올 광복절은 분명 Independence Day가 아니다. 광복을 맞은 날이다. 빛을 회복한 날이다. 해방기념일이다. Liberation Day다. 다음번 칼럼은 메타버스 세미나 후기로 써야겠다. 8월 광복절을 맞아서 ‘박인환을 아시나요’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낫겠다. 이번 주에는 메타버스 해외시장뉴스를 마감해야겠다. 담당자가 영 맘에 안 들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하겠다. 그게 내 실리를 챙기는 길이다. 그게 내 명분을 쌓는 일이다.

타호에서 하늘을 품었다. 드넓은 시공간에 한 사내가 있다. 차갑지만 선명한 공기를 마시며 내 안의 빛을 회복한다. 광복은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매일이 광복절이다. (촬영: 김삶)

화장실에 다녀와서 아침일기 속도를 낸다. 배설했다. 아니면 배출 정도면 교양있는 표현일까? 영어로도 Evacuation이 배설과 배출을 의미한다. 하루하루 생각이 많아지는 나날이다. 어제는 타호(Tahoe)에서 모래놀이를 하며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리노(Reno)까지 이동해서 첫날 일정을 소화했다. 둘째날은 타호를 보러 갔다. 제대로 된 계획 없이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제프리 코브(Zephyr Cove) 해변에 차를 대놓고 신나게 놀았다. 다음번에는 작정하고 준비해서 와도 좋겠다고 느꼈다. 점심 끼니때를 놓쳐서 타호에서 해결할까 하다가 새크라멘토 쪽에 있는 스테이크하우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부지런히 운전해서 블랙앵거스(Black Angus Steakhouse)에 갔다. 아웃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적당히 고급스러웠고 가격도 받아들일 만 했다. 영어로는 이걸 affordable이라고 표현할까.


영어 사용자가 지칭하는 상황과 한국어 사용자가 영어로 표현하는 지점이 다를 때가 있다. 서로 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닌 것이다. 영어수업을 하면서 강사와 비슷한 사례를 짚고 있다. 예를 들면 트렌드(Trend)가 그렇다. 우리는 트렌드를 필요 이상으로 자주 사용하지만 미국 현지에서 우리가 지칭하는 트렌드는 ‘쉬프트(Shift)’ 정도가 가까울 것이다. 변이(Transition)와 탈바꿈(Transformation)도 그렇다. 지난번 칼럼에서 인용한 유선경 님의 문장 “나의 세상은 언어의 한계만큼 작거나 크다”는 외국어에도 적용된다. 하루키도 언급했듯이 외국어의 유창성은 깊이에 기반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발음과 말의 속도도 중요하겠지만 주어진 상황을 적확히 지칭할 수 있는 외국어 어휘와 인식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외국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모국어를 갈고닦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창한 모국어 사용자가 되겠다는 이상이 있다. 단순히 말 잘하는 차원이 아니다. 가장 유창하고 가장 유려하고 가장 유식한 글을 쓰겠다는 장기적 목표를 세웠다. 방금 즉흥적으로 맘먹었다.


아침일기가 A4 한글(hwp) 11pt 기준으로 50쪽을 채웠다. 글자수를 세어보니 77,000자가 넘었다. 넉넉하게 생각해 분기에 50쪽은 쓸 수 있겠다. 사정이 생겨 못 쓰는 날을 고려해도 그렇다. 올해까지 150쪽을 쓰고 내년에는 200쪽을 더 쓰자. 양에 집착하는 내가 우둔하게 보일 수도 있다. 반론하겠다. 질을 담보하려면 양이 우선되어야 한다. 양을 절대적으로 확보했을 때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쭉 써내려가자. 50쪽 쓰느라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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