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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상자 밖

by 김삶

2박 3일 여행을 마치고 맞는 아침이다. 평소 루틴대로 스타벅스 리버오크스 지점에 왔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6시에 문을 열었다. 5시 58분쯤 도착했기에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몸을 풀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의 자리, 나의 길. 궤도에 올라선 나는 내가 가야할 지난한 길이 두렵지 않다. 7월이 되면서 마음이 급해진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자. 그러면서 내 몸상태부터 회복하자. 몸이 무겁다. 체중조절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점심을 빠지기로 한 이유를 잊지 말자. 점심에 걸어야 한다. 버거킹까지 가서 간단히 음료 한 잔을 마시고 걸어오자. 걷기가 내 체중을 줄일 것이고 내 정신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다.

사진 한 구석에 내 일의 상자가 보인다. 내 일의 상자 밖에는 도래하지 않은 내일이 있다. 내 삶의 상자 밖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지속한다. 태도와 자세가 전부다. (촬영: 김삶)

새크라멘토 킹스 농구팀 유니폼을 입고 타호에서 시간을 보낸 다음 어깨가 빨갛게 탔다. 발바닥도 그렇고 몸 여기저기에 이상신호가 온다. 다시 원시적인 방법으로 삶을 정비해야겠다. 걷고 걷고 걷자. 걸으며 생각하자. 자동차에 의존해 작은 상자 안에 갇혀있던 내 삶을 갱신하자. 메타버스 세미나에 갔을 때 연사와 참석자들이 ‘Think outside the box’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상자 밖을 생각하는 법’을 실현하지 않는다. 이념으로, 사상으로 받아들인다. 철학이 체화되지 못할 때 모든 구호는 공허하다. 내 삶의 상자 밖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내 일의 상자 밖을 무엇으로 구축할 것인가. 늘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으려는 자세만이 상자 밖을 상상하게 한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태도가 전부다.


자세를 가다듬는다. 강렬한 햇살을 야구모자로 가린 채 고개를 스크린에 처박고 자판을 두들긴다. 이번 여행에서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다시 들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글쓰기의 힘>을 다룬 편을 들었다. 집에 와서는 <사피엔스>, <숨결이 바람될 때> 편을 들었다. 시간이 빌 때 집중해서 책을 읽어야겠다. 랜초 코르도바에서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를 개시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전업작가로 사는 일은 팍팍하다.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지 않을 때 예술혼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쓴다. 회사만 다니는 사람은 많다. 전업으로 쓰는 사람도 많다. 회사를 다니면서 꾸준히 글쓰는 사람은 드물다. 이 지점에 희소성이 있다. 내가 만들어낸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나는 직장인으로서 글쓰는 사람이다.


정제된 글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결국 담백하고 정돈된 생활과 생각에서 글이 나온다. 삶을 가다듬어야 한다. 시끌벅적한 시공간을 피하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면이든 온라인이든 너무 많은 노출은 내가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3월에 칼럼을 시작하면서 보도된 기사를 공개했다. <실리콘밸리 스케치>를 시작하고 3개월을 기다렸다. 내가 내 글로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8편의 글을 게재했고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올해 11편을 더 쓸 예정이다. 모두 45편의 글이 될 것이다. 산술적으로 따져도 10만자 가까운 분량이다.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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