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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과 도약

by 김삶

어제는 일기에 제목을 붙인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오늘은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고 제목을 짓자. 사내에서 <자율보행자>의 반응이 좋다. 조회수가 390에 가깝다. 400을 넘길 수도 있다. 조심스레 기대를 걸어본다. 사장을 포함해 직급을 막론하고 근래에 조회수가 가장 높은 글이 아닐까 싶다. 내가 추구한 길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고 자극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 내심 그렇지만 김훈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균형을 찾는다. 내 존재는 남들의 평가로 거룩해지거나 폄훼되는 것이 아니다. 맘대로 해봐라. 나는 꾸준히 내 길을 간다. 묵묵하게 걷는다. 호시우행이라고 했다. 호랑이처럼 앞을 보고 소처럼 걷겠다. 냉정하게 현상과 사물을 응시하고 끊임없이 써내려가겠다.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다 보니 지난해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다짐이 많은 삶>과 <No Stopping Anytime>이 생각난다. 태어난 이상 멈추지 않고 가야만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나의 숙명이다. 숙명을 받아들이겠다. 쓸 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주 다녀온 메타버스 세미나에 대해서도 풀어내야 하고 7월 말까지는 KDI 나라경제 잡지에 실릴 원고를 넘겨야 한다. 회사가 확보한 외부채널을 통해서 쓰는 글은 더욱 신중하고 사려깊게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깊이가 있으면서 재미까지 있으면 좋겠다. 2000자 분량의 칼럼에는 자신이 있다. 어느 정도 특화됐다는 느낌도 받는다. 이란에서 썼던 원고가 1700자 내외라면 미국에서 쓰는 글은 거기에 500자를 더했다. 미주한국일보는 2300자를 기준으로 쓰자. 어제 말했듯이 다 쓰고나면 10만자를 축적하게 될 것이다.


어제는 저녁자리가 있었다. 하나도 즐겁지 않은 회합에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일은 고역이다. 재미가 없다보니 애꿎은 맥주만 빠르게 들이켰다. 피처 두 개를 내가 다 비웠다. 다이어트한다고 점심을 거르다 보니 빈 속에 술을 들이킨 셈이 됐다. 나는 금세 취했고 취기에 힘입어 상대 회사를 곯릴 만한 주제도 꺼냈다. 더 나아갈 수도 있었는데 참았다. 잠깐만 버티면 되는 일이니까. 별 일 없이 끝났고 다음번 모임을 잡자고 했다. 모임이 다시 생기더라도 웬만하면 안 나가고 싶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마시고 싶다. 골프도 치지 않는 내가 너무 고립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 나는 대신 축구를 한다.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된 접점이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방식대로 쭉 밀고 나가자.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영혼을 깨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반환점을 돈 나는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드넓은 하늘 아래 한 사내가 앞을 바라본다. 호랑이처럼 바라보고 소처럼 걷겠다. 나의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위해 진다. (촬영: 김삶)

마당 장(長)의 방식과 방향에 공감가지 않는 지점이 늘어나고 있다. 함께한 시간이 1년 반이 되다보니 자연스런 일이다. 불편을 감수하고 내가 확보한 시간에 나의 사유를 넓히고 깊게 파내려가야 한다. 점심이 가장 좋은 때다. 점심시간에 혼자 산책하면서 하루하루 삶을 점검해 나가자. 시답잖은 한국 얘기로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우주에 흔적을 남길 만한 사유를 하고 결과를 글로 정리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내 인생 전체가 그럴 수도 있다. 작게 보면 이제 미국생활이 반을 돌았다. ‘반환과 도약’으로 슬로건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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