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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치자

by 김삶

맨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쓴다. 그제 저녁자리의 찜찜함을 떨쳐내기 위해 어제도 퇴근 후 즉흥적으로 맥주를 마셨다. 옆방에 있는 동료와 1시간 만에 파인트를 세 잔 연거푸 입에 털어넣었다. 즐거운 자리였다. 내 글의 의도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는 오래된 인연처럼 속내를 털어놓았고 웃고 떠들면서 맥줏잔을, 아니 저그(jug)를, 아니 쪼끼를 부딪쳤다. 6시 해피아워가 끝나 2차를 대접하려고 했지만 아들과 약속이 있다고 해서 다음을 기약했다. 조만간 내가 발굴한 아지트로 그를 데리고 갈 것이다. 우리는 다시 문학을, 사회를, 박지원을, 열하일기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와의 다음번 만남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취기를 빌려 아들을 혼냈다. 멋쩍은 마음에 아들을 꼭 안아줬다. 이적이 <사랑이 뭐길래>에서 노래했듯이 “내가 아들을 지켜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아들에 대한 소유욕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들을 진정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화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술에 취한 채 울적한 감정이 들어 침대에 누워 아들을 꼭 안아줬다. 그러다 내가 먼저 잠들었다. 저녁 8시도 안 된 시간이었을 테다. 11시 반쯤 깼고 목이 타서 차가운 생수를 한병 들이켰다. 다시 잠을 청했다. 결국 새벽 5시가 조금 안 되어 기상했다. 머리에 모기가 한 마리 윙윙거리는 느낌이다. 오늘은 술을 자제하겠다. 맨정신을 회복하겠다.


침대에서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그를 혁신가로 규정한다. 타이탄의 5가지 아침의식을 의도적으로 생각했다. 이불정리, 아침일기, 차 마시기, 같은 동작 반복하기, 명상하기. 차 대신 주로 커피를 마시고 걸으면서 명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매번 명상에 실패하지만 그래도 목적지와 지향점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럼 된 것이다. 5가지 아침의식을 좀 더 간단히 두 자로 축약해보자. 커피, 일기, 명상, 정리, 동작. 이 중 3가지 이상은 매일 할 수 있다. 5가지를 하는 날이 더 많다. 나의 아침루틴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셈이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헤맸던가.

다시 맥주다. 일곱 종의 맥주를 한 잔씩 들이킨 나를 상상한다. 취기가 돌자 나는 말이 많다. 살아갈수록 할 말이 많아진다. 맨정신에 할 말을 해야 무게가 실린다. (촬영: 김삶)

아침에 스타벅스로 오늘 길에 과달루페 강둑에서 너구리를 마주쳤다. 찾아보니 너구리가 아니라 라쿤(Raccoon)이다. 라쿤은 둑방을 건너기 위해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나도 혹시 나를 해치지 않을까 경계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먼저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해야 하나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별 일이 없었다. 내가 지나가자 라쿤은 길을 건너 반대쪽 둑으로 넘어갔다. 만약 곰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몽상이라도 섬뜩하다. 현실에서 마주한 적절한 자극이었다. 인간인 나도 결국 한 마리 동물이다. 대자연에서 와서 대자연으로 돌아간다. 매일 의미를 만든다는 점에서 자그마한 차이가 있을까. 동료는 나의 반골 기질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반골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순응하거나 따르지 아니하고 저항하는 기골 또는 그런 기골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내가 반골임을 인정한다. 앞으로도 계란으로 바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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