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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하는 사람

by 김삶

화장실에 다녀와서 글을 쓰려고 보니 옆사람이 자리를 옮겼다. 나는 내 앞의 창이 활짝 열려 있어야 뭔가 쓸 수 있는데 그가 커튼을 끝까지 내렸다. 하릴없이 씽크패드를 들고 옆자리로 간다. 따스한 아니 강렬한 햇살을 응시하며 자판을 두들긴다. 금요일이다. 금요일 아침이다. 카페 미스토 한잔을 하고 브루커피를 한잔 더 마시면서 정신을 깨운다. 조금 살아났다. 어제는 초저녁부터 초주검 상태였다. 아내가 준비한 닭죽을 먹고 8시도 되지 않아 바로 잠에 빠졌다. 중간에 깼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다시 잠을 청했다. 결국 일어난 시간은 4시 20분쯤이었다. 3-40분 인터넷뉴스를 살피면서 기상 준비를 했다. 5시 반에 집을 나섰고 오늘 스타벅스 리버오크스점에 도착한 시각은 5시 45분이다.


주말에 쓸 원고를 생각했다. 8월에는 박인환 이야기를 할 계획이다. 7월은 무슨 내용에 대해 쓰면서 마무리할까. 메타버스의 탈중앙화에 대해 쓰려고 한다. 메타버스, 메타버스, 메타버스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에 철학적 담론을 엮겠다. 파놉티콘을 제시한 미셸 푸코를 가져오겠다. UC버클리 앞에 있는 카페 스트라다로 가서 학구적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글을 풀어낼 생각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1980년 미셸 푸코가 UC버클리에 방문교수로 왔을 때 자주 간 커피숍은 <에스프레소 익스피리언스>다. 이 커피숍은 문을 닫은 것 같다. 내가 UC버클리 캠퍼스를 갔을 때 맘에 쏙 들었던 커피숍은 <카페 스트라다>다. 카페 스트라다에서 가상의 미셸 푸코를 상상하며 글을 쓰겠다. 메타버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추론하며 글을 전개해 나가겠다. 이번 주말이 기대된다.

<걸어서 실리콘밸리> 프로젝트를 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새벽 풍경을 마주했다. 세상은 이면이 있다. 숨겨진 모습을 바라본다. 더 낯선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가자. (촬영: 김삶)

어제는 컨디션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해야할 일을 마무리했다. <메타버스는 과연 무엇일까>로 썼던 뉴스를 <메타버스,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로 틀어서 다시 올렸다. 기존 내용에 세미나 사진을 싣고 연사들만 욱여넣은 글이다. 영 맘에 안 들지만 일단 마감을 해야길래 억지로 썼다. 중간에 저장하지 않은 글이 날라가는 위기도 있었지만 기억을 되살려 금방 편집했다. 다 쓰고보니 어느 정도 구색은 갖췄다. 시장조사 담당 파트너 직원이 외부기고로 여유가 생겨 두 번 정도는 안 써도 되겠다고 했다. 우선 7월과 8월은 쉴 생각이다.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하반기에 무슨 어젠다를 제시할지 고민해봐야겠다. 미주한국일보에 혁신을 소재로 다루며 <갱신과 경신>이란 제목으로 한 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재가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술에 지배당한 한 주였다. 술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마셔야겠다고 다짐한다.


맨정신으로 살고 제정신으로 일하자. 내가 돈을 받는 이유를 생각하자. 돈의 많고 적음은 잘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적당한 금액을 받는 건지, 과분한 건지, 저평가된 건지 모르겠다. 지금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돈을 조금 덜 생각하고 의미를 조금 더 떠올리자. 어제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걸어서 실리콘밸리> 이야기가 나왔다. 마당 장이 “나는 돈을 줘도 안 할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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