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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떠올리는 문화인

by 김삶
진리는 탁월함이다. 진리에는 진선미가 있다. 진리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다. 진리는 집 안에도 있다. 아이들 방바닥에 무지개가 떴다. 찰나지만 무지개는 진리였다. (촬영: 김삶)

토요일 아침에 쓴다. 리노와 타호를 가기로 한 날이어서 서둘러야 한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3일 연휴다. 아들의 가라테 수업이 있는 줄 알고 11시 신사임당 대관식에 간다고 말했다. 어제 사업회 회장께 전화해서 아마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음이 쓰인다. 리노로 출발하는 길에 잠깐 들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강릉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살다보니 많은 기회를 맞이한다. 율곡 이이, 신사임당, 허균, 허난설헌... 강릉이 낳은 인물을 떠올리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왜 그럴까. 나는 이렇게 훌륭한 지역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내게는 기개가 있다. 나는 강릉 사람으로서 강릉인의 자부심을 품고 살아간다.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고 고등학교 교가를 떠올린다. “진리 속에 우리 학교 영원하여라. 빛날사 그 이름.” 나는 무엇보다 진리를 언급한 교가에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빌 클린턴을 떠올린다. 그가 이야기한 미래선호의 문장은 “진리는 존재하지만 유한한 인간은 진리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정도인 것으로 기억한다. 강릉인으로서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진리를 떠올린 문화인이다. 자존감을 갖자.


어제는 퇴근하면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답답한 친구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하려고 결심한다. 글에 대한 조언, 조직에 대한 공헌, ESG 강의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했지만 그의 공감을 샀다고 자위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길을 갔을 뿐이다. 그에 대한 빈수레 선생의 평가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뉘앙스였지만 나는 다시 한번 김경과 진행한 김훈의 인터뷰를 인용해서 답하겠다.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 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테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내 말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내 내면의 진실이기 때문에 한 발자국도 양보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도 외롭지는 않데요. ‘저까짓 새끼들 쯤이야’ 하는 생각도 있었을 거예요.” 이쯤하고 나는 다시 묵묵히 내가 가야할 길을 가려고 신발끈을 질끈 동여맨다.


2분기는 도약의 시기였다. 미주한국일보 기고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루틴을 만들고 근력을 형성했다. 결국 써야 한다. 써야지 남는 것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야 돌이킬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무형일지 모른다. 메타버스는 허상일 수도 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시각을 확보한다. 7월 2일이다. 7월과 8월은 휴가철이라 금세 지나갈 것이다. 하반기는 이런저런 업무를 하면서 정신없이 보낼 예정이다. 형식적으로는 반환점을 돌지만 내용 면에서 남은 시간은 1년밖에 안 된다. 조금 더 바삐 보낼 생각이다. 몸도 마음도 바쁘게 살면서 알찬 시간을 만들겠다. 점심은 각자 하는 게 낫다. 점심을 내 지평을 한 단계 넓히는 계기로 만들려고 한다. 메타버스 포럼에서 만난 독일기업 메타시티 창업자를 사무실로 초대했다. 한국에서 온 주재 직원으로서 이런 일을 드물었을 테다. 나는 내 방식대로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자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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