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담론을 만들고 있다

by 김삶

“해어진 남방에 그을리지 않고도 건강한 얼굴 붉은 입술 가진 아이야. 가진 이들에게 조화로운 세상. 우뚝 서거라. 안아주거라. 너의 품으로. 걱정 마. 넌 우리보다 더 따뜻하단다. 자랑스런 네 검은 피부 가리지 마라. 어리석은 이들의 눈빛 피하지 마라. 너는 똑똑하다. 너는 건강하다. 너는 아름답다. 대한민국보다. 지지 않는 네 엄마의 땅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온기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먹보다 위대한 이름. 차별보다 거대한 이름. 가르쳐주어라. 깨우쳐주어라. 걱정마. 넌 우리보다 더 따뜻하단다. 자랑스런 네 검은 피부 가리지 마라. 어리석은 이들의 눈빛 피하지 마라. 너는 똑똑하다. 너는 건강하다. 너는 아름답다. 대한민국보다. 지지 않는 네 엄마의 땅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온기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먹보다 위대한 이름. 차별보다 거대한 이름. 가르쳐주어라. 깨우쳐주어라.” - 루시드폴 3집 <국경의 밤> 中 Kid


어제부터 루시드폴 3집에 빠져 있다. <사람이었네>에 이어 오늘은 <Kid>를 필사했다. 루시드폴 3집은 세계화에 대한 음반이다. 나도 개발도상국과 개발도달국 논의를 글로 쓰면서 다시 세계화를 생각한다. 미국을 적으로 규정해 모든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미국의 논리를 비판없이 받아들여 ‘지배받는 지배자’로 살고 싶지 않다. 주체로 서겠다. 여기서 미국을 기술이나 빅테크 기업으로 치환해도 나의 논리가 성립할 것이다. 기술의 주체적 이용을 나의 테마로 잡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스타벅스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심 뿌듯하다. 강력한 루틴을 만들고 습관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다.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깼지만 다시 잠을 청했고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에 기상했다. 7월의 첫날이자 첫째 금요일인 오늘 원고가 실렸다.

메타버스 세계에서 나는 어떻게 먹고 마실 것인가. 선뜻 답이 안 나온다. 세미나 밖으로 나오자 샌프란시스코 49ers의 조 몬태나가 말한다. 기네스나 한잔 하라고. (촬영: 김삶)

<빌 게이츠와 개발도달국>은 내가 바라본 세계와 우리의 언어인식에 대해 쓴 글이다. 루시드폴은 15년 전 자신의 앨범에서 사람을 이야기했다. 사람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위한 개발이고 누구를 위한 발전이란 말인가. 메타버스 세미나에서도 미국 연사들은 사람을 이야기했다. 탈중앙화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 버클리 대학에서 가르친 미셸 푸코, 카페 스트라다도 버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지만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제도권에서 가르치는 내용으로 내 색깔을 낼 수는 없다. 미국 근무를 하면서 학위를 따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큰 의미가 있을까? 남들이 하는 방식을 흉내내서는 결코 나로 우뚝 설 수 없다. 내 가치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자.


<빌 게이츠와 개발도달국>에서 문장 하나가 아쉬움이 남는다. 주술호응이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다. 교정을 한다고 했는데 바로잡지 못했다. 다시 읽어보면 억지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계획과 우리 모두의 동참을 촉구했다”는 부분이다. 아마 맨정신에 썼다면 “자신의 계획을 밝히고 우리 모두의 동참을 촉구했다”로 했을 것이다. 촉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급하게 요구하여 재촉함’이라는 뜻이다. 자기 스스로 계획 수립과 정교화를 재촉했을 수도 있으니 완전히 틀린 뜻은 아닐 테다. 좀 궁색할까. 끝까지 본다고 봐도 하나씩 마뜩잖은 부분이 나온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의 심정이 꼭 이럴까. 주술호응은 진한 아쉬움이 남지만 땀의 흔적을 새긴 것으로 합리화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기혁명의 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