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백워드) 설계모형

정답에 다가서는 인생의 길

by 지평선

흔히 듣는 말 가운데 교육과정(커리큘럼)이 있다. 교육과정이란 말을 종종 듣기도 하고 또 쓰기도 하는데 자주 쓰이는 것과 견주어 시원한 정의는 찾아보기 힘든다. 다만, 교육과정을 나름대로 정의한 많은 말들을 보면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보인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교육의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교육과정은 불변의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가장 적절한 답을 탐색하는 노력이며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교육과정이 가장 적절한 교육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사실 정답이 없는 것이 더 맞는 판단이다.


내가 이해한 대로는 지금껏 교육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교사 입장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학생에게로 들어가려는 노력이 그 하나고, 학생 입장에서 학생의 안으로부터 무언가를 끄집어 내주려는 노력이 다른 하나이다. 앞의 것을 전통주의라고 하고, 뒤의 것은 경험주의라고 한다. 교육과정의 역사에서 둘은 언제나 갈등관계였다는데 지금도 딱히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교육과정은 몇 가지 말로 표현되는데, 역량중심교육과정, 이해중심교육과정, 배움중심교육과정 같은 말을 주로 만나게 된다. 역량중심은 미래에 필요한 어떤 역량들이 있어서 그것을 길러주자는 뜻이고, 이해중심은 학생이 실제로 이해를 했는지를 보려는 것이며, 배움 중심도 학생에게 실제로 배움이라는 것이 일어났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같은 시대에 적용된다는 교육과정 모델들도 여전히 전통주의와 경험주의의 두 갈래 길이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까지 펼쳐놓은 생각 조각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 조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바로 "역행설계모형"이라는 수업모형이다. 사실 오늘날의 교육과정 모델들이 저마다 역량, 이해, 배움처럼 강조하는 주제들은 서로 다른데 각 모델을 실제로 구현하는 교실 수업으로 오면 재미있게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그 방식이 역행(백워드) 설계모형이다. 드러나는 뜻으로만 보면 방향을 거꾸로 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정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지금까지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어떤 방향이 있는데, 이제는 그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 그것도 무언가 중요한 것을 거꾸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읽힌다.


지난날의 교육과정은 먼저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그것 가운데 일부를 추려 시험을 치른다. 내용이 먼저 있고, 평가가 마지막에 나오는 교육 구조를 가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교사는 전체 내용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고, 학생들은 배운 것들을 모두 외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있는데, 무엇이 나올지 모르니 가능한 많은 것을 외워야 했다.

그런데 역행설계모형은 평가를 앞으로 가져온다. 쉽게 말해 학기 초에 기말 시험 문제를 미리 제시하고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교사와 학생이 함께 노력하는 교육 구조를 만든 것이다. 현대 교육과정은 진짜 배움이 필요한 것들, 그래서 학생들이 꼭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을 "역량"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한다. 정리된 역량은 의미 있는 평가가 가능하도록 다시 "성취기준"이라는 형태로 제시된다. 이 성취기준이 이를테면 기말 시험 문제이며, 교과마다 이미 주어져 있다. 교사는 제시된 성취기준에 맞추어 학생들이 이해도 하고, 배움도 일어나 실제적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주로 수행이라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교사는 많은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것들을 잘 간추린 다음, 학생 안에 의미 있는 이해와 배움이 발생해서 실제로 교실과 생활에서 작동하는 역량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제, 펼쳐놓은 생각을 갈무리하여 나의 인생으로 가져와 본다.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익히다 보면 지식도 넓어지고, 역량도 갖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만큼 갖추었으니 인생에서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정답을 찾게 될 거야! 문제는 "이만큼"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스펙 사회에서 항상 깨닫게 되는 진리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항상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타고난 것의 차이든, 부모나 조상의 차이든 나 자신과 관계없는 조건들이 큰 변수가 되는 생태계에서는 어떤 경쟁이든 공정할 수 없고, 결과 또한 그렇다. 많은 것을 쌓다 보면 정답을 맞힐 확률이 높아진다는 인생 가이드는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전통적인 교육의 길을 버리고 역행설계모형을 인생에 대입해 본다. 나의 인생 과제는 나만의 인생 목적,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라 꼭 필요한 역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된 역량을 실행하여 성취할 수 있는 기준들로 바꾸고, 성취기준들을 실제로 달성하도록 시간과 에너지와 방식을 맞춤형으로 설계하여 인생 수업을 진행한다. 이렇게 가장 적절한 내 인생의 교육과정을 만들어 진행한다. 한 국가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상을 실현할 목표, 현대에 맞는 국민 공통의 역량을 갖추게 하는 목표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설계하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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