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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Feb 02. 2021

'촌철활인'이 세상에 나오게 된 비사

'촌철살인'이냐 '촌철활인'이냐?

아주 간결한 말로 핵심을 찌르는 것을 흔히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의 참선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지만 뜻풀이를 해보면 섬뜩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와서 이것저것 꺼내 써도 사람을 못 죽이는데 나는 단지 한 치 쇳조각만 있을 뿐이나 그것으로 당장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에서 비롯됐습니다. 중국 송나라 시대 고문에 수록된 구절입니다. 아무리 정곡을 찌르는 것이라고 해도 ‘살인’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까요? 만약 요즘 시대에 이런 비유를 했다가는 언어폭력으로 중벌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환자는 죽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환부를 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얼마 후 환자가 사망했다면 수술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촌철살인은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핵심을 찌르기에 몰입해서 사람은 어떻게 되든 고려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만약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 촌철살인의 경구가 자주 오간다면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촌철살인이 사랑의 언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촌철활인'을 제안하게 된 사연

2006년 무렵에 아침마다 받아보는 이메일 레터가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유명한 레터가 ‘고도원의 아침 편지’와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였습니다. 경영 이야기는 경영에 관련된 명언과 이를 해설하는 ‘촌철살인’의 코멘트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 레터를 아침마다 읽으면서 ‘촌철살인’이란 구절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레터 발행자인 조 대표께 메일을 보낼까 했는데 마침 광주 경총 조찬 연수회의 강연이 예정돼있어서 그때 말하기로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메일을 잘 받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살인’이라는 글귀를 볼 때마다 꺼림칙합니다. ‘살인(殺人)’보다는 ‘활인’(活人)이 낫지 않을까요? ‘짧은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다’는 뜻도 좋고요.” 이런 제안에 조 대표도 흔쾌히 좋은 의견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촌철살인’ 대신 ‘촌철활인((寸鐵活人)’이란 어구가 들어간 레터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제안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반영한 것에 대해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 ‘촌철활인’이 이곳저곳에서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제호로도 사용되고 강연이나 칼럼 제목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촌철활인을 사용하게 된 사연을 소개한 칼럼, ‘촌철살인이냐 촌철활인이냐’를 읽게 됐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일이 떠올라 조 대표께 SNS를 통해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약간의 곡절이 있었지만 ‘촌철활인 제안 지금도 여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는 답글을 받기도 했습니다.


<'촌철활인' 제호의 책들, 자료 : 교보문고>


휴넷 공식 블로그에 소개된 '촌철활인'에 관한 이야기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맨 먼저 행복한 경영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살인(殺人)이라는 글귀를 보는 것이 좀 꺼림칙합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살(殺) 대신 활(活)을 써서 촌철활인(寸鐵活人)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 레터를 보낸 지 수년이 흐른 어느 날, 광주상공회의소 주최 강연장에서 만난 어느 사장님의 제안이었습니다.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의 <촌철활인>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나오게 된 비화입니다.

[출처] 저자와의 식사에 초대합니다 - 촌철활인 저자 '휴넷 조영탁 대표'|작성자 휴넷


이젠 촌철활인이 필요한 시대

공식 블로그에 이렇게 ‘촌철활인’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를 솔직하게 게재한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촌철활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이 생산되고 회자되는 것은 ‘행복한 경영 이야기’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안자로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촌철활인은 명석함과 지혜로움을 모두 갖춘 포용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관용과 포용이 필요한 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말 한마디가 도처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은 광주일보 은펜 칼럼 ‘이젠 촌철활인이 필요한 시대’(2020.10.14.)라는 제목의 글을 중심으로 휴넷 블로그에서 인용한 글을 삽입하고 사진을 추가해서 재작성했습니다.


사실 이 칼럼은 어떤 일을 계기로 쓰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촌철활인'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구태여 이 아이디어의  제안자임을 밝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무명(無名)과 유명(有名), 어느 것이 더 좋을까요? 그리고 유명(有名)이라면 어떤 말이 촌철활인에 해당할까요? 촌철활인이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을 종합해서 브런치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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