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백무산 시인의 '정지의 힘'>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지난해 여름, 교보문고 광화문 빌딩 현판에 게재되어 많이 알려진 백무산 시인의 '정지의 힘' 이란 시입니다. 멈춤, 정지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정지하는데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했지 않나 싶습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정지하고 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정지한 것이 아니라서 많이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차제에 정지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평소에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어서 정지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를 못하기도 합니다. 이제 정지에 이르렀으니까 '달리는 이유'를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정지의 중요성에 관한 시인의 통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차가 달리는 힘만 있고 멈추는 힘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 등장하는 괴물 검찰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고 합니다. 열심히 자라던 나무는 여름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성장을 멈추고 그렇게 멈춘 가지 끝에 꽃을 피웁니다. 계속 자라기만 하면 풍성한 꽃도 튼실한 열매도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나무 박사 우종영의 책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코카콜라의 유명한 광고 캠페인 "리프레쉬를 위한 잠깐 멈춤(The pause that refreshes)"
정지에 관한 코카콜라의 캠페인을 살펴보면서 다른 각도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캠페인은 1929년에 시작했고 Adage가 선정한 20세기 Top 100 광고 캠페인 중 2위를 차지했습니다. 처음엔 이 캠페인이 Adage 선정 Top 2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배경을 알고 나서야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키의 "Just Do It" 은 바로 이해가 되지만 이 캠페인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1929년에 시작한 코카콜라의 광고 캠페인>
당시 코카콜라 CEO였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코카콜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 캠페인도 그러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미국인에게 '리프레쉬를 위한 잠깐 멈춤'을 제안한 것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쁜 생활 중의 Break 요소를 제안했고 그 결과 Pause는 코카콜라와 동의어로 인식됐습니다.
이 캠페인이 시작될 무렵 미국에선 대공황이 몰아닥쳤습니다. 그때 '힘들 땐 코카콜라와 함께'와 이 캠페인을 실시해서 대공황으로 심리적 위축을 받은 미국인에게 정신적인 격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려울 땐 잠시 쉬어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시의적절한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쾌한 이 순간'으로 번역돼서 광고됐는데 핵심 키워드인 refresh와 pause의 원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직역하면 '리프레쉬를 위한 잠깐 멈춤'인데 말입니다. 깊은 의미가 담긴 "The pause that refreshes"가 기껏해야 코카콜라를 마실 때 목 넘김의 '상쾌한 순간'만 뜻하는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의 pause는 백무산 시인이 말하는 '멈춤'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울림이 있는 캠페인으로 100년 가까이 되지만 아직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어서 교육, 컨설팅 분야에서 현재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브랜드 선정 글로벌 브랜드 순위에서 12년간이나 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쳤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코카콜라를 병 속에 든 아메리카, 아메리카의 에센스로 불리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2020년 글로벌 브랜드 순위도 6위로 여전히 상위권입니다. 한낱 청량음료가 제조업, 금융업, 석유산업과 같은 기간산업을 제치고 상위에 랭크되다니 가당하기나 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로 치면 칠성사이다가 삼성전자나 현대차보다 브랜드 자산가치가 높게 평가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코카콜라 캠페인에 대해 알아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잠시 멈춤의 원칙( Pause Principle)
코카콜라의 "The pause that refreshes" 캠페인은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잠시 멈춤의 원칙( Pause Principle)도 이 중 하나입니다. 이 제목으로 책으로도 출간됐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점검할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나 제프 베조스가 1년 중 몇 번은 생각 주간을 갖는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Pause의 확장 편인 'Pause-Think-Act' 도구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산책이나 요가, 목욕 등을 하고 다시 생각하면 훨씬 나은 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휴식은 바닥난 감정 에너지를 채워주고 재정비할 시간을 줍니다.
스피치 분야에서는 상대방이 말을 하면 바로 대답을 하지 말고 잠시 멈춘 후에 말을 하라고 권합니다. 잠시 멈추면 말하기 전에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상대방에게 경청하게 되고 이러한 모습은 사려 깊은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상대편에 대해 조건반사와도 같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면 내 안에서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들끓어 오릅니다. 그래서 나는 긴장을 늦추고 숨을 들이쉬고 여러 번 생각해보면서 반응합니다. 때로는 '완전히 이해가 안 되는군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같은 질문을 해보기도 하죠."
<데브라 벤튼 저, 미소의 카리스마>
백무산 시인의 '정지의 힘'을 보고 코카콜라의 'The pause that refreshes' 캠페인, 여기서 비롯된 '잠시 멈춤의 원칙( Pause Principle)'을 관련해서 이야기해봤습니다. 오늘날 코로나 정국에 딱 맞는 '정지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백무산 시인의 말처럼 꽃을 피우려면 멈춤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