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환경에서 '뜻밖의 만남'이 어려운 이유
최근 6개월 동안 3개의 교육과정에 수강생으로 참여했습니다. 하나는 오프라인으로, 둘은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1단계로 완화되어 오프라인으로 20명 정도가 교육에 참여했는데 온라인과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인사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교육에 참여했는지도 물어보고 교육 내용에 대한 토론도 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온라인 교육과정은 이런 교류가 거의 없습니다. 강사의 지식 전달에 치중했었고 수강생끼리 수평적 교류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줌 기능에 소모임 토론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온라인 교육도 좋은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집콕하면서 편한 복장으로 들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커다란 장점입니다. 시간 절약, 에너지 절약입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뜻밖의 만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것의 우연한 발견,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낯선 것들의 만남과 조합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 점은 많은 연구자들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사회적 거리가 가까워야 뜻밖의 만남이 자주 일어날 텐데 말입니다. 온라인에서는 강사와 수강생의 수직적 교류가 위주이고 수강생들의 수평적 교류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렌디피티를 통해서 이루어진 혁신의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뢴트겐의 X선, 제너의 종두법, 3M의 포스트잇... 그 밖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혁신적인 기업을 하게 된 계기도 많습니다. 하워드 슐츠가 밀라노 출장에서 이탈리아식 카페를 보지 않았다면 오늘의 스타벅스는 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미국 출장길에서 우연하게 인터넷을 접해보고 중국에 인터넷망이 깔리기도 전에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결혼하게 된 계기도 ‘뜻밖의 만남’이었습니다. 이번에 이혼 발표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빌 게이츠와 머린다, 머린다의 회고록에 의하면 그녀가 행사에 늦게 참석해서 빈 좌석 두 개 중의 하나에 앉았는데 나중에 빌 게이츠가 남은 하나의 자리에 앉게 돼서 서로 알게 됐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도 행사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성과 사귀게 됐고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많은 기업에서 세렌디피티 환경이 조성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하면 세렌디피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 우연한 소통을 늘이는 것 셋째, 발견을 실행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구글은 신사옥을 지으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직원들이 뜻밖의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 세렌디피티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온라인이야말로 새로운 환경이고 우연한 소통이 빈번한 곳입니다. 구글의 ‘순간 검색’ 기능은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개발됐습니다. SNS는 세렌디피티와 댓글을 기반으로 작동됩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거는 “우리는 사람들이 행하는 세렌디피티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과정에서 세렌디피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날로그 세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아날로그 마인드를 가진 채로 형식만 온라인에서 구현하려고 하니까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일까요?
- 광주일보 은펜컬럼(2021.05.12)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는 18세기 영국 소설가 호레이스 월폴(1717~1797)이 페르시아 동화인 <세렌디프의 세 왕자들(The Three PrincesofSerendip)을 읽고 만든 단어임. 동화 속의 세 왕자가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연이은 우연으로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
이후 세렌디피티는 '뜻밖의 발견이나 발명'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발생하지만, 많은 기업에서 세렌디피티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