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승아, 니는 요즘 안 외롭나? 나는 요즘 외로워 죽겠다. 와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 집사람한테 외롭고, 자식들한테 외롭고, 친구들한테 외롭고, 회사 동료들한테 외롭고, 이웃한테 외롭고..., 내가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 시인인 너는 어떠니?"
친구의 느닷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운 거야. 외로우니까 사람이야.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야 본질. 죽음이 인간의 본질이듯이. 삼라만상에 안 외로운 존재가 어딨노? 본질을 가지고 '왜?'라고 생각하지 말한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는 '왜 외로운가'하고 생각하지 말고 외로움을 이해해야 하는거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더 뼈저린 외로움을 느끼게 될 거야. 그럴 때는 '아,내가 인간이니까 외롭지.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지' 그렇게 생각해야돼"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친구에게 해준 말, '외로우니까 사람이야'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시 <수선화에게>를 쓰게 되었다.
인간의 외로움에 빛깔이 있다면 어떤 빛깔일까?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수선화의 연노란 빛이 인간의 외로움의 빛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제목을 <수선화에게>로 삼았다. 따라서 <수선화에게>는 수선화를 노래한 시가 아니다. 수선화를 은유해서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 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외롭게 혼자 태어나서 외롭게 혼자 죽어가는 존재다. 죽음을 기다리며 5년 동안이나 자리보전하고 있던 아버지의 외로움에 아들인 나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대모산 자연공원의 수선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읽으면서 시 제목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고 왜 수선화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궁금했다. 그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인용했다. 수선화는 우리 주위에서 자주 하게 발견되는 꽃이다. 자주 산책하는 대모산 자연산책로에도 많이 심어져 있다.
수선화의 노란 색깔을 외로움의 빛깔로 보다니 시인의 마음은 다른 것 같다. 수선화(水仙花)의 영문 명칭은 Narcissus이다. 아름다운 청년 나르시서스(Narcissus )가 호수에 비친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됐는데, 그게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가 수선화(Narcissus)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유명한 윌리엄 워즈워스의 <수선화 Daffodils>라는 시가 있다. 호숫가에 핀 수선화 군락을 보고 지은 시다. 시기는 30대. '고독의 축복인 마음의 눈(inward eye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이란 구절은 어쩌면 같은 관점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영혼은 외로울 때 가장 활기차고 예리하게 고양된다"라는 말이 있지만 '분주한 바보' 입장에서는 느껴보지 못할 경지다. 워즈워스는 평생 외롭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많고 많은 꽃들 중에서 ‘수선화(Narcissus)’를 시의 소재로 택한 것은 워즈워스 역시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절과 전문을 함께 소개한다.